영안실 음악회의 추억

홍승찬 예술의전당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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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가수 장사익씨의 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의 일이다. 한 무대에 섰던 인연으로 서로 알고 지내던 바이올리니스트 피호영씨가 소식을 듣고는 문상을 갔다고 한다. 습관대로 악기를 들고 영안실에 들어서자 조문을 받던 상주가 갑자기 덥석 손을 잡고는 난처한 주문을 하더라는 것이다. 돌아가신 어머님이 평소 늘 바이올린 소리를 좋아하셨다면서 영전에서 한 곡조 켜달라고 졸랐던 것이다. 혼자되신 어머님을 가까이 모시지 못하는 것이 늘 안타까웠던 차에 이런 부탁을 받고 보니 상주의 심정이 너무 가슴에 와 닿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바로 악기를 꺼내 ‘타이스의 명상곡’을 연주했고 그 순간 상주뿐만 아니라 다른 문상객들, 그리고 무엇보다 연주자 스스로가 가슴이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 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셨다. 경황이 없는 중에도 앞서 소개했던 사연이 머리 속에 또렷이 되살아났고 그와 마찬가지로 아버님 영전에 음악을 바쳐야겠다는 생각이 너무나도 간절해졌다. 그래서 경우가 아닌 줄 알면서도 악기를 들고 문상을 온 음악인들에게 간곡한 부탁을 드렸다. 그런데 뜻밖에도 흔쾌히 청을 들어주었고 예정에도 없는 음악회가 날마다 이어졌다. 주일이 사이에 끼어 어쩔 수 없이 4일장을 치렀는데, 저녁마다 모두 세 차례의 짧은 연주회가 열렸다. 문상객이 뜸해지는 밤늦은 시간, 힘든 시간을 도와주느라 늦게까지 분주했던 고마운 분들도 잠시 숨을 돌리고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문상을 와서 잠시 소찬을 앞에 두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조문객들도 음악을 듣느라 대화를 멈추었다. 그리고 이웃 영안실을 지키던 사람들까지 소리가 나는 곳으로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사람들이 둘러 앉아 함께 음악을 들었다. 연주가 시작되고 얼마지 않아 여기 저기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모두들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지만 얼굴에는 더 없이 해맑은 미소가 가득 번졌다. 그렇게 모두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슬픔을 나누었고 그로 말미암아 너나없이 크나큰 위로를 받았다.

그 자리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그 일을 기억하며 두고두고 이야기하고 있다. 평생에 그렇게 감동적인 음악을 듣지 못했다는 말들도 있고 그 때 들었던 음악이 무엇이냐고 묻기도 한다. 무엇보다 선뜻 어려운 청을 들어준 연주자들이 누군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도 많다. 분명히 그 때 다짐을 했었다. 소중하고 가까운 누군가가 영영 눈을 감거나 혹은 그 누군가의 가족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영안실을 지켜야 하는 날만큼 조촐하지만 뜻 깊은 음악회를 만들어주겠다고 말이다. 주변뿐만 아니라 이 사회 구석구석까지 이런 생각이 번져간다면 우리 모두 음악이 갖는 참 뜻을 깨닫게 되고 더불어 죽음이 있어 더욱 절실해지는 삶의 의미를 경건하게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참으로 격식을 따지는 듯싶지만 사실은 의식을 가볍게 생각하는 듯하다. 겉치레가 아니라 시간과 여유를 두고 뜻을 새기며 마음을 나누는 그런 예식이 아쉽다. 세상이 아무리 숨 가쁘게 돌아가도 어느 순간에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볼 줄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때로는 숨을 고르고 마음을 다스려야 숨이 턱에 차서 숨넘어가는 일이 없을 것이다. 바로 그 때 음악이 다른 무엇보다 절실하게 필요할 것이다. 그걸 깨닫게 되면 누구나 음악을 가까이 두고 평생을 함께 하게 될 것이다. 그러다가 음악하는 누군가를 찾아서 벗으로 삼으려 들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친구로 말미암아 여유를 찾고 위로를 얻고 평화를 누리게 될 것이다. 부디 그렇게 여러분 모두에게 언제나 평화가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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