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 생각나는 것

조성진 성남아트센터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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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한 달 날씨가 일정치 않아 봄을 만끽하기가 좀 어려웠다. 청소년의 달, 가정의 달인 5월에는 부디 무르익은 봄이 당분간 계속되어 갑자기 여름으로 치닫는 변덕스러운 기후가 아니기를 빌어본다. 요즈음 날씨가 그렇다 하더라도 다른 나라에 비하면 한국은 봄을 비교적 오래 느낄 수 있는 행운의 나라다. 유럽 같으면 3, 4월은 결코 ‘봄’이라고 부를 수 없는 달이고 그저 5월 한 달만 반짝할 뿐이다. 상대적으로 5월을 기다리고 또 반기는 노래가 서양에 특히 많은 것은 그 까닭이다.

5월5일이 어린이날인 것은 가장 따뜻한 시기를 잡아 어린이들에 대한 사랑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어버이날과 같은 시기가 되면서 5월이 가정의 달이 된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어린이날이 ‘행사’를 넘어 진정으로 어린이와 나아가 청소년의 현재와 장래를 생각하고 그들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논의의 계기가 되지는 못하고 있다. 5월에 펼쳐지는 어린이와 청소년 문화행사라는 것들도 마치 성인들이 스트레스를 술로 풀려는 것처럼 일시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청소년을 위한 공연을 해본 실무자라면 5월이 청소년에게 현실적으로 얼마나 부적절한 달인가를 알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중간고사가 있으며 아직 학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청소년은 소위 ‘문화’라는 것을 즐길 여유가 없다. 결국 청소년을 위한 비교적 적절한 시기는 방학 기간인 한여름이 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청소년을 문화로 이끌려면 일단 ‘해방감’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초·중·고교에서 행해지는 소위 교양 교육 중에서 특히 짜증나는 것이 있다. 책을 읽고 나서 독후감을 쓰게 하는 일이다. 외국에서도 이러는 것 같고 내가 어려서도 자주는 아니지만 독후감을 쓴 적이 있는 것을 생각하면 아마 일제강점기의 교육에도 있었던 것 같다. 글 쓰는 연습으로 그것이 물론 나쁠 것은 없다. 그러나 입시지옥에서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교양서적이라도 독서가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것을 부담 없이 접하는 마음의 여유를 마련해 주는 일, 유익한 것에서 재미와 흥미를 느끼도록 유도하는 일이다. 청소년을 위한 공연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클래식이든 팝음악이든 비보이 댄스든 그저 좋아하는 것을 즐기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도 공연을 강요하는 수업 프로그램이 있다. 공연 티켓을 제시해야 하고 심지어 음악감상문을 쓰게 하는 수업도 있다고 한다. 나아가 클래식의 경우는 감상에 전혀 필요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방해가 되는 잡동사니 지식들을 외우게 하기도 한다. 이야말로 청소년을 허영으로 이끄는 단서가 되는 것이다.

세계 최극빈자의 나라로서 극심한 전쟁후유증을 겪던 나의 어린 시절에는 지금도 외우고 있는 수많은 봄노래가 있었다. 아이들의 찢긴 가슴을 물질로는 아니나마 노래로 달래주려는 어른의 사랑이 이 봄 노래들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오늘날 경제 대국으로 진입한 한국의 청소년들이 과연 나의 어렸을 때보다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과거에 있던 중학입시는 지금 없지만 대신 초등학교 아이들이 토플공부를 하는 안쓰러운 상황이다. 이러다가 인간의 변종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공포감이 들 때도 있다.

입시지옥에서 아이들을 당장 해방시키지 못한다면 부분적인 해방감이라도 제공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틈새에 독후감이나 음악감상문 따위의 쓸데없는 짓을 그만두고 그들이 겪고 있는 각박한 상황과 전혀 다른 세계를 ‘느끼게’ 해 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맛있고 영양가 있는 것을 섭취하게 하여 그들이 정신적으로 피폐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전쟁으로 인해 상처받은 아이들을 달래주려 봄노래를 만든 과거 어른들의 마음이 현재도 있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고 거국적이고 장기적인 프로젝트에 따라 수행되어야 하는 사업이다. 창피하고 민망하고 눈뜨고 보기 힘든 어른들의 행태가 연일 신문, 방송의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미래는 이 상황보다 좀 더 성숙되기를 염원한다면 실마리는 청소년에게밖에는 찾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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