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을 앞두고

‘부모가 죽으면 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다. 자식에 갖는 부모의 마음이, 부모에 갖는 자식의 마음보다 진하다. 진해도 비유가 안 될만큼 진하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이래서 나왔다. 자식을 위한다면 뭘 희생해도 아까울 게 없는 것이 부모의 심정이다. 목숨을 대신하는 경우가 있어도 사양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 큰 자식에게 주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 돈이다. 부모 돈 받아서 사업을 시작하는 자식 치고 성공한 사람은 없다. 부모가 창업한 가업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과 자식이 부모에게 돈을 받아 사업하는 것과는 다르다. 가업은 자식에게도 이미 인식이 주입된 예비 직업이다. 그러나 자식이 사업을 한답시고 부모에게 얻은 돈은 인식이 결여된 공돈이다.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사업자금으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집을 팔아댄 사업자금이고, 또 하나는 부모에게 얻은 사업자금이다. 전자는 재수가 없어서 안 되고, 후자는 자신의 돈이 아닌 공돈이기 때문에 안 되는 것이다.

교장을 지낸 초등학교 동창을 참으로 오랜만에 만난적이 있다. 연금이 꽤 많아 노후가 안정된 것으로 보았는 데, 알고보니 속사정은 오히려 반대였다. 아들의 사업자금을 위해 퇴직금을 일시불로 받아서 준 돈을 아들이 다 까먹어 대국(아버지) 망하고 소국(아들) 망한 꼴이 된 것이다.

한 월남 참전 전상 퇴역장교는 뭔가가 잘못되어 국가유공자 대우를 못받다가 얼마 전에야 가까스로 유공자 인정을 받을수가 있었다. 그간 밀린 보상금을 소급해서 받은 돈이 몫돈이었을 뿐만이 아니라, 매월 100여만원을 지급받게 됐다. 그러나 몫돈을 날린데 그치지 않고 매월 받는 100여만원도 손에 쥐지 못하는 형편이 됐다. 몫돈은 아들의 사업자금으로 날렸고 월 100여만원은 역시 아들 보증을 선 대가로 충당되고 있는 것이다. 수원시내 동진아파트에 살던 노부부가 어느날 길에 나앉게 됐는데, 그 역시 아들의 사업자금 보증을 섰다가 아파트가 경매에 넘어가 지금은 시골 단칸 사글세방에서 지낸다.

어찌하여 잘못된 것만 말하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부모가 준 돈으로 자식이 벌린 사업치고 성공을 못하는 것은 인간사의 공식이다. 거의 100% 실패한다. 노인정마다 동전을 셈하며 노후를 없이 보내는 노인들이 많으나, 이들이 원래 돈을 안 벌어놨던 건 아니다. 자식들에게 사업자금 등으로 돈을 뺏긴(준) 탓이다. 자식을 이기지 못하는 약한 마음이 결국 말년을 망친 것이다.

노인정 얘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 어느 노인정 회장은 아들들이 돈을 바라는 눈치가 보여 호통을 쳤다고 말한다. “나도 평생 뼈골 빠지게 벌었으니까, 너희들도 뼈골 빠지게 벌어라! 어차피 내가 죽으면 너희들 것인데 뭐가 그리 바쁘냐?”며 매몰차게 뿌리쳤다는 것이다. 이 노인정 회장의 아들 형제는 자수성가했다.

수원 송죽동에 땅 부자가 있다. 일찍이 아버지 되는 이가 농사를 지을 때 곳곳에 사둔 땅이다. 송죽동 일원이 개발되면서 땅 가졌던 사람들이 땅들을 팔았지만, 이 분은 아버지가 농사를 짓는데로 손대지 않고 놔두었다. 따로 자립해서 먹고 살았던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지금은 그의 땅이 됐지만 아직도 팔지 않은 땅이 많다.

짐승 새끼도 크면 독립한다. 하물며 인간이야, 그런데 짐승과 다른 부모 자식간의 정리를 하필이면 자식이 부모의 돈 의지로 사려 하는 것은, 부모 자식간 정리를 잘못 해석하는 것이다. 부모는 자식을 낳아 키우고, 가르치고, 짝을 맺어주면 그로써 자식에 대해 할 일은 끝난다. 부모가 여유 있으면 자식이 사는 것을 도울 수도 있다지만, 어차피 부모가 자식의 인생을 대신해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식들은 그들대로 다 살수 있는 것은 젊기 때문이다. 나이든 부모들은 더 늙기전에 삶을 구가해야 할 것이며, 그럴 권리가 있다.

잘 안 오던 자식들이 집에 오거나 전화가 걸려오면 덜컥 겁이 난다는 부모들이 많다. 또 무슨 부담을 안겨줄지 걱정이 앞서기 때문인 것이다. 효 사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사람 살이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효의 형태는 시류에 따라 변한다. 현대생활의 효는 자식이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효도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들이 부부간에 화목하고 집안 살림 잘 건사해가며 제 새끼들 건강하게 키우는 것을, 더 이상 바라지 않는 최고로 친다. 내일이 어버이날이다. 부모에게 꽃을 선물하는 것도 좋지만, 부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는 어버이날이 돼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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