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악단이나 실내악단 등 연주자들이 단체 연주를 할 때 대부분 통일된 연주의상을 입는다. 하지만 이 연주의상 때문에 단원들 사이에는 가끔 난처한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보통 연주 전날 악단의 총무들이 단원들에게 무대 리허설은 몇 시이며, 연주 넥타이는 무슨 색을 매야 하며 어떤 옷을 입고 나오라고 주문한다.
그러나 이를 귀담아 듣지 않아 낭패를 보는 단원들이 종종 있다. 예컨대 수년전 서울시향의 연주회 때 팀파니 주자인 K씨가 양복을 준비하라는 총무의 이야기를 못 들었는지 연주회날 다른 단원들과 달리 혼자만 턱시도를 입고 솔리스트처럼 연주해야 했다.
결국 그는 연주가 끝난 뒤 감봉을 당하고 말았다. K씨와 같은 경우 대부분 감봉 등의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에 연주자들의 임기응변 또한 기발하기까지 하다.
보타이를 매야하는 날 모르고 긴 넥타이를 가지고 왔을 때는 줄일대로 줄이고 졸라매서 손쉽게 보타이를 만든다. 와이셔츠를 잊고 와도 역시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위기를 넘기곤 한다. 연주시간은 임박해오고 와이셔츠를 구할 곳도 없는 그야말로 난감한 경우 단원들은 러닝셔츠를 뒤로 돌려입고 그 위에 넥타이를 맨다. 물론 관객들로서는 단원들이 러닝셔츠를 돌려입었으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할 만큼 구별이 쉽지 않다.
언젠가 KBS교향악단원인 L모씨는 연주가 있는 날 모르고 운동화를 신고 나왔다. 연주가 불과 얼마 남지 않아 단원들이 마음을 졸이며, 그를 바라보는데 잠시 자리를 떴던 그가 히죽히죽 웃으며 나타났다. 그것은 하얀 운동화에 검정 테이프를 줄줄이 붙여 즉석에서 검정구두처럼 만든 일회용이었던 것이다. 결국 순간적인 재치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솔리스트들의 에피소드도 재미있다. 여성 연주자들은 남성들과 달리 연주복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많은 정성을 쏟는다. 대체로 기악연주자들이 연주동작에 지장을 받지 않는 연주복은 선택하는데 반해 성악가들은 화려한 의상을 입는 경우가 많다. 여성연주자들은 계절에 따라 2~3벌 정도의 연주복을 갖고 있다. 값은 보통 몇 십만원 에서부터 기천만원까지 다양하다. 오래전 H씨가 지휘하는 코리안 심포니 반주로 열린 ‘신춘 오페라 아리아의 밤’ 공연 때다.
국내 내로라하는 유명 성악인들이 총동원 된 이날 연주회에는 마침 이탈리아에서 공부하던 중 잠시 귀국한 소프라노 K씨가 무대에 서게 됐다. 현재는 중견 성악가로 활동 중인 그녀는 오랜만에 고국 팬을 위해 다른 때와 달리 화려한 패티코트를 입고 무대에 나서던 참에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우아하게 걸음을 내딛던 그녀가 갑자기 비명소리와 함께 무대에 나뒹구는 것이 아닌가. 그만 화려한 패티코트를 밟아 눈 깜짝할 사이에 넘어지는 아찔함이 연출됐다. 잠시 후 객석에서 ‘와’ 하는 함성과 함께 누군가 박수를 쳤고 박자를 맞춘 격려의 박수가 객석을 가득 메웠다.
그녀는 관객들의 성원을 받으며 무사히 연주를 마쳤지만 다음날 공연에서는 부은 손목을 감추느라 때 아닌 긴 장갑을 끼어야 했다. 속 모르는 관객들은 색다른 패션이라고 생각했을 테지만 말이다. 그 후로 무대감독은 긴 치마를 입고 나오는 연주자들에게 일일이 “무대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치마 조심 하세요”라는 말을 챙겨야 했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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