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신비에 관해 일찍이 이런 말을 들었다. 국립의료원 의사들 얘기다. “별 문제 없이 입원했던 환자가 합병증이 생기는 등 이상하게 병세가 악화되어 죽어서 나가는가 하면, 희망이 비관적이었던 환자가 기적적으로 회복되어 걸어서 나가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의사는 최선을 다할 뿐이지, 살고 죽는 것은 인간 능력의 한계 밖이라는 것이다.
결국은 병으로 죽는 것이 인간이지만 인간은 무한히 병을 극복하려고 한다. 그래도 언젠가는 불가피한 것이 죽음이다. 인간의 오복(五福)은 수(壽)·부(富)·강녕(康寧)·유호덕(攸好德)·고종명(考終命) 다섯 가지다. 고종명은 명대로 살다가 편안하게 죽는 것을 말한다. 즉 편안하게 죽는 것도 오복 중 하나인 것이다.
대법원 판결의 존엄사 인정 역시 고종명을 원용했다 할 수가 있다. 이미 식물인간이 되어 의식이 없는 환자에게 아직 목숨이 붙었다 하여 무작정 산소 마스크만 씌우거나, 뻔히 안 될 줄 아는 말기암 환자에게 고통만 더 주는 치료를 강행하는 것은 인도상의 문제다. 이래서 기왕 죽음을 피치못할 병세 같으면 연명의술 대신 병고를 들어주는 것이 호스피스(Hospeace)다. 호스피스는 ‘Hospital of peace’의 약어다.
그런데 존엄사는 병고를 들어주는 것이 아니고 편히 임종을 맞게하는 것으로 죽음과 직결된다. 환자의 존엄사를 인정하는 치료 포기, 즉 불가능의 한계를 어디까지로 보느냐는 것은 정작 난해한 문제다. 살릴 수 있는 환자를 자칫 죽게 만드는 과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의 존엄사 인정 판결은 났어도 이를 법제화하는 덴 앞으로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물론 엄격히 제한해야 하겠지만, 천차만별의 임상을 구분하기란 쉽지가 않다. 의학계를 중심으로 관련 학자들로 구성된 모임에서 시안을 만들어 공청회 등을 통한 사회적 동의를 구해야 할 것이다.
작고한 김수환 추기경은 생전의 병상에서 산소 마스크를 사양했다. 신의 소관인 인명의 한계에 인공연명을 거부한 것이다.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르겠으나 이도 참고할만 하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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