火葬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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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은 평생을 국가와 인민만을 생각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온전히 나라에 바친 대표적 사례는 화장 유언이었다. 그는 각막과 장기 일부를 해부학 연구용으로 쓰고 나머지는 화장해 홍콩이 바라다보이는 바다에 뿌려 달라고 당부했다. 그 염원 덕분인지 영국 식민지였던 홍콩은 1997년 중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덩샤오핑이 화장 방식으로 삶을 정리한 것은 중국 초대 총리를 지낸 저우언라이(周恩來)의 영향이었다. 그는 1976년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유해를 화장해 조국 곳곳에 뿌려 달라고 유언했다. 당시 장례위원장을 맡은 덩샤오핑은 저우언라이의 유언대로 시신을 화장한 뒤 비행기로 전국을 돌며 하얀 뼛가루를 흩날렸다.

한국의 지도자 가운데 화장 방식으로 육신을 자연에 돌려준 이는 극히 드물다. 대통령을 비롯해 지금까지 타계한 정치 지도자 중 화장 유언을 남긴 사람은 찾기 힘들다. 조상의 묫(墓)자리가 후손의 발복(發福)에 영향을 준다는 풍수지리설에다 호화분묘로 가문의 위세를 떨치려는 과시문화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일부 대통령 후보는 선거 전에 조상의 묘를 이른바 명당으로 이장했다.

이런 터에 화장 방식으로 장례를 치른 첫 전직 대통령이 나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유서에서 “오래된 생각”이라면서 “화장해달라”고 부탁했다. 자신을 ‘무교’로 분류했지만 생사관은 불교적 영향을 받은 듯하다. 유서의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라는 표현은 서산대사가 입적 전에 남긴 게송 ‘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삶은 한 조각 뜬구름이 일어남이요) 사야일편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죽음은 한 조각 뜬구름이 스러짐이다)’을 떠올리게 한다.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고 유언했다.

오늘 경복궁에서 영결식을 마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수원시 연화장에서 유골로 변해 고향이며 영원한 안식처가 된 경남 김해 봉하마을로 떠난다. 인간은 죽음 앞에 누구나 평등하다. 홀로 이승을 떠난다. 전직 대통령이 자살로 삶을 마감한 한국 정치현실이 서글프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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