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나와 친한 어느 분이 오페라와 뮤지컬이 어떻게 다르냐고 내게 물었다. 그런 것 너무 알려하지 말고 그냥 공연을 즐기라고 말해주었는데 퉁명스러운 대답은 아니었지만 너무 불친절하지 않았나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러나 성의없이 보이는 대답을 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첫째 개인적으로 나는 모든 것을 실체에 앞서 개념으로 나누는 행위를 지극히 싫어한다. 둘째로 공연의 실무를 하는 사람으로서 공연 자체 이외의 지식을 일반인에게 설명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말하자면 영양학의 설명보다는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데 더 관심이 있다. 또 대개의 경우 지식은 감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셋째 오페라와 뮤지컬은 사실 구별하기 힘든 시점에 와 있기 때문이다. 최근 뮤지컬 제작에 참여하면서 뮤지컬이 오페라와 여러 가지 점에서 달라 개인적으로 몹시 흥미롭지만 이런 것들은 객석에 앉은 관객에게는 전혀 느껴지는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뮤지컬은 전세계 공연무대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장르이고 한국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상황을 설명하자면 사회학적 분석까지 필요한 여러 해석이 가능하나 여기서는 뮤지컬이 오페라의 뒤를 이어 20세기에 생겨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만 말하고 싶다. 모든 예술 장르가 그렇지만 특히 관객과 직접 접촉하는 공연은 끊임없이 형태가 변해왔고 오늘날 우리가 보는 뮤지컬은 바로 오늘날의 모습일 뿐이다. 나이로 따진다면 실은 뮤지컬에 비해 오페라는 청소년이나 마찬가지다. 오페라는 400여년 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시험관 아기’로 태어났지만 뮤지컬의 뿌리인 ‘악극’은 그 발생의 시점이 아득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오페라는 귀족문화요 뮤지컬은 대중문화라고 여긴다. 그러나 시민사회가 되면서 오페라에서 귀족적인 면은 모두 도태되고 말았다. 적어도 20세기 초까지 오페라는 오늘날 영화 산업처럼 관객이 새 작품을 즐기는 대중문화였던 것이다. 오페라하우스가 생기기 훨씬 이전에 뿌리를 둔 뮤지컬은 그 행위의 장소를 야외까지 포함하고 있었기에 대중성이 오페라보다 강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페라가 생명력을 갖게 된 것도 끊임없이 악극의 형태를 흡수해왔기 때문이다. 19세기가 되면서 악극은 자체 극장을 갖게 됐고 오페라와 악극의 퓨전은 끊임없이 지속돼왔다. 오페라 레퍼토리 중에서 누구나 알고 있는 명작 ‘카르멘’은 사실 그 형식의 뿌리를 악극에 두고 있다.
오페라와 악극(오늘날의 뮤지컬)은 점점 가까워져 오늘날 형식상으로는 각기 몹시 다양해서 오페라냐 뮤지컬이냐 구별하기가 어렵게 됐고 굳이 구별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재미있는 것은 오늘날 대부분의 뮤지컬이 오페라의 형식을 띄고 있는데 비해 상당수의 고전 오페라들에서 과거 뮤지컬의 형식을 본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오페라와 뮤지컬은 이제 정말 똑같다는 말인가? 분명히 다른 점 한 가지가 있다. 뮤지컬은 목소리를 증폭시키지만 오페라의 목소리는 증폭되지 않은 생음악이라는 사실이다. 다시말해 오페라와 뮤지컬은 성악의 발성이 다르고 그 때문에 공연장도 달라야 한다. 요즈음 오페라 공연에서도 역량이 부족한 성악인을 위해 목소리를 증폭시키는 악습이 있고 또 관객들이 스피커로 나오는 소리에 오염된 나머지 기술적으로 증폭시킨 목소리를 잘 구별하지 못하는 수도 많다. 그러나 이것만큼은 예술인들의 양심으로 허용해서는 안된다. 영상과 증폭된 음향을 동원해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뮤지컬은 뮤지컬대로 더욱 세련되고 예술성있게 만들어 대중을 즐겁게 해야 하지만 한 편으로 전통 창법을 유지하는 오페라를 육성해야 한다. 사람과 사람이 순수하게 접촉하는 공연 본래의 생명을 이 장르를 통해서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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