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의 검찰은 권한이 분산돼 있을 뿐 아니라 여러 제도를 통해 민주적 통제를 받는다. 미국 검찰의 경우 플리바기닝(유죄협상제도) 등 폭 넓은 재량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여러가지 제한을 받는다. 각 주의 검사장과 지방검사를 주민들이 4년마다 선거로 뽑기 때문에 민주적 정당성이 확보되고, 연방 검찰총장을 겸하고 있는 법무부 장관의 눈치를 살필 필요가 없다.
유권자들이 견제와 균형을 위해 주지사와 정당 성향이 다른 검사장을 선출하는 일도 많다. 또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대배심제도(Grand jury)가 있어 검찰의 공소권 남용을 방지한다. 검사는 배심원에게 증거를 제시하는 역할만 할 뿐이다. 미국 검찰은 한국과 같이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갖고 있지도 않다.
독일 검찰은 ‘머리만 있고 손발은 없는’ 구조다. 자체 수사 인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힘을 분산시킨 것이다. 수사는 경찰이 맡고, 검찰은 수사 절차를 주재하는 역할에 그친다. 검사가 작성한 신문조서는 법정에서 증거능력이 없다. 독일 검찰도 연방경찰과 주 검찰이 분리돼 있다. 연방검찰은 주 검찰에 대한 지휘감독권이 없다.
프랑스는 사법부에 소속돼 있는 ‘예비판사’가 수사를 맡는 독특한 구조다. 사실상 예비판사가 한국의 검찰에 해당되는데 법원의 통제하에 있는 셈이다. 일본에선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독립기구인 검찰심사회가 공소 제기가 적절한지를 심사해 검찰권을 민주적으로 통제한다. 영국은 수사는 전적으로 경찰이 담당하고 검찰은 기소 결정과 공소유지, 수사에 대한 법률적 조언만 맡는 구조다. 공소권도 여러 기관이 나눠 갖고 있다.
그러나 한국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갖고 있어 그 힘이 막강하다. ‘무소불위의 권력 조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원인이다. 유신 시절 최고 사정기관은 중앙정보부, 전두환·노태우 정권에선 보안사령부였다. 김영삼 정부 이후 검찰은 20년 가까이 국가 최고 사정기관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하지만 ‘정치검찰’ ‘권력의 시녀’라는 오명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검찰이 휘두른 칼은 자칫 잘못 쓰면 ‘악마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말을 검찰은 명심해야 한다. 검찰은 국민을 대리해 정의를 구현하는 신성한 조직이다. 명예를 훼손해선 안 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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