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다로운 해외음악가, 조건도 가지가지

해외 유명음악가들이 내한공연을 할 때는 매우 까다로운 요구조건을 내걸곤 하는데 성악가의 경우 그 정도가 심할 때가 많다. 수년전 세계 흑인 3대 성악가로 꼽히는 미모의 소프라노 바바라 헨드릭스가 서울에서 공연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와 출연계약서 등 공연관련 내용을 팩스로 주고받던 중 매니저로부터 다음과 같은 조건이 붙어 왔다. ‘The artists kindly asks the audience not to interrupt the different song group with applause.’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관객들이 연주 중간에 박수를 치지 않도록 해달라는 내용이다. 이를 받아든 순간 왠지 한국관객을 우습게 보는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한동안 가시지 않았다.

또 다른 공연을 위해 내한 했던 소프라노 카티아 리차렐리는 무대 천장에 매달린 마이크를 제거하지 않으면 아예 공연을 취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놔 관계자들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계약서에 녹음에 대한 내용이 없는데 몰래 녹음을 하는 게 아니냐며 오해를 한 것이다. 무대직원들은 당황하며 어쩔 수 없이 마이크를 제거해야 했다. 한술 더 떠서 녹음실은 그의 매니저에 의해 공연 내내 점령당하고 말았다.

독일의 유명한 메조소프라노 군둘라 야노비츠를 초청했을 때는 공연장 대기실에 백포도주를 준비해 달라고 요청해 직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당시 환갑의 나이가 다됐던 야노비츠는 공연이 끝날 때까지 포도주 한 병을 다 비우고도 조금도 취한 기색 없이 열창으로 관객을 매료시켜 공연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세계적인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는 계약서에 따뜻한 수건과 차가운 수건, 생수를 반드시 준비해달라고 요구해 궁금증을 불러일으켰었다. 마침내 공연이 시작되자 무대 뒤쪽 탁자 위에는 식당을 연상케 하듯 따뜻한 수건과 차가운 수건이 가득 쌓이고, 생수병이 나란히 놓이게 됐다. 아무튼 도밍고는 공연 중간중간 들락거리면서 수건으로 손을 닦고 생수를 마시며 긴장을 풀었는데 세계적인 명성만큼이나 특이한 모습이었다.

성악가뿐 아니라 지휘자나 협연자 초청공연에서도 유명세 만큼이나 까다로운 요구조건을 내거는 경우가 있다. 현재 세계 최고의 지휘자로 인정받고 있는 뉴욕 필하모닉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인 로린 마젤이 미국 5대 교향악단 가운데 하나인 피츠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을 맡고 있을 때 내한 연주를 했었다.

대체로 계약서는 출연료, 일정, 숙식조건 등을 붙여 단조롭게 2~3장이 일반적인 경우인데, 피츠버그 심포니오케스트라의 계약서는 수 십장에 달했다.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우선 지휘자용 승용차는 리무진이어야 하며 운전기사는 영어를 구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단원들용 버스는 에어컨과 화장실이 설치돼야 하고 버스마다 통역요원을 1명씩 동승시켜 달라고 했다.

심지어 단원들을 버스로 이동시킬 경우 5분 간격으로 차량을 출발 시키되 첫 차와 마지막 차가 20분정도 간격을 두도록 요구했다. 아마도 낙오되는 단원이 없기를 바라는 뜻에서 인 듯 싶었다. 또한 버스로 장거리 이동시 2시간을 초과해서는 안되며 초과할 경우 사전에 단원들과 합의해야 하고 이동 중 1시간 30분이 지나면 꼭 휴식시간을 취한 후 연주를 한다는 것이다.

악기에 대한 조건은 더 까다롭다. 교향악단의 악기 화물량은 보통 8t 정도로 4~5t 차량 2~3대가 필요한데 차량마다 20℃ 내외의 온도를 유지하는 장치를 갖추고 보관 창고도 방습 환풍 장치까지 사전에 이야기가 되곤 한다.

언젠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공연 시 지휘자 쿠르트 마주어가 반사판 기능 부실을 이유로 잠시 공연을 중단한 해프닝은 이들의 까다로움을 잘 보여준다. /박인건 경기도문화의전당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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