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EU FTA(자유무역협정) 협상이 타결되었다. 이로써 양측은 서명을 위한 법적 절차에 들어가 오는 9월쯤 협정문을 확정하는 가서명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며, 이후 본서명, 각국 의회의 비준을 거친 뒤 내년 상반기쯤 발효될 것으로 전망된다.
독일, 영국, 프랑스 등 27개국으로 구성된 EU의 총생산(GDP)은 16조9천억 달러로 세계 최대 규모다. 한·EU FTA가 발효되면 관세장벽이 사라져 제조업에서 농업 및 서비스산업에 이르기까지 대대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산업계는 작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대(對) EU 무역수지 흑자가 184억 달러에 이를 정도로 수출우위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평균 4% 수준인 EU의 관세까지 없어지면 자동차·IT·섬유 등 공산품의 수출이 크게 늘면서 전체 경제에 큰 이득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화학·기계 등 일부 제조업과 농업 분야에서는 오히려 수출보다 유럽 제품 수입이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우리 경제에 큰 파장을 몰고 올 EU와의 FTA가 갖는 의미를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EU와의 FTA 체결은 글로벌 FTA 경쟁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크게 강화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2002년 칠레와 FTA를 맺은 것을 계기로 ‘동시 다발적인 FTA 협상’을 추진해왔다. 우리나라가 싱가포르, 아세안 등과 맺은 FTA는 이미 발효됐으며, 미국과의 FTA는 의회 비준을 남겨두고 있고, 지난 2월에는 인도와의 FTA 협상도 타결됐다.
WTO를 통한 다자간 협상이 난항을 겪는 가운데, 무역의존도가 70%를 넘는 우리로서는 FTA가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필요한 자원을 수입하여 우수한 기술과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만든 제품을 수출해서 먹고사는 경제구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특히 EU와의 FTA는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선진국·개도국을 아우르는 ‘FTA 허브’의 위상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둘째, EU와의 FTA 체결은 미국 의회의 한·미 FTA 비준에도 긍정적 영향을 주고, 일본 및 중국과의 협상에도 큰 자극이 될 것이다. 한·미 FTA는 2년 넘게 교착 상태에 빠져 있으며, 미국 측은 비준안의 의회 상정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한·EU FTA가 한·미 FTA보다 먼저 발효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한국 시장에서 미국산 자동차는 유럽산에 크게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한·EU FTA가 먼저 발효되면 가격 측면에 있어서 미국산 자동차의 경쟁력은 더 떨어지게 된다. 이런 상황은 미국 내 한·미 FTA 조기 비준론에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EU FTA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일본 및 중국과의 FTA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우선 한·EU FTA가 타결됨으로써 우리나라가 일본에서 들여오는 일반기계 및 부품 등의 일부가 EU산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일본도 한국과 FTA 협상 추진을 서두를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된다면 동아시아 시장통합 과정에서 일본과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중국 또한 한국과의 FTA 협상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오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우리가 미국과의 FTA 협상에서 경험했듯이, 어떻게 보면 FTA를 추진하는데 있어서 상대국보다 국내 이해 조정이 더 어려울 수 있다. 특히 미국이나 EU와 같은 거대 경제권과의 FTA 체결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를 감안하여 정부는 한·EU FTA를 통해 피해가 우려되는 국내 부문에 대한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정승연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