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의 짧은 생활을 접고 귀국길에 타고 다니던 자동차를 팔아 본 적이 있다. 이미 10년이 넘은 차이고 중고차매매단지조차 없는 지역이어서 20달러를 주고 신문에 광고를 냈다. 광고가 나가던 날 새벽 5시부터 첫 전화가 걸려왔고, 내가 광고에 내놓은 가격과 조건으로 중고차를 사겠다는 사람이 등장했다. 그 사람 이름이 아마도 데이비드였는데, 우선은 차를 점검하고 나서 나에게 300달러를 할인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왜 아까 전화할 때와 다른 소리를 하냐고 그에게 물었다. 데이비드는 나의 물음에 진지하게 대답하기를 그 차는 자기 아들에게 고등학교 졸업선물로 사주기로 했는데 돈이 좀 모자란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갈등이 생겼지만, 우선은 데이비드와 협상을 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신문에 내놓은 가격은 이미 파악하여 내놓은 합리적인 가격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할인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가 차의 가치는 알고 있으나 현금이 부족하다며 200달러라도 할인을 해 달라고 나에게 다시 부탁했다. 이렇게 5분여의 실랑이 끝에 그에게 최후의 메시지를 전했다. “차의 가치로 봤을 때, 나는 1달러도 깎아줄 수 없다. 그러나 당신 아들이 졸업한다고 하니 당신이 내 차를 살 경우 내가 100달러를 선물로 주겠다.” 그 얘기를 하자 데이비드는 즉각 오케이를 하고, 우리의 거래는 성사되었다. 이로서 나는 정해진 가격에 차를 팔았고 얼굴도 보지 못한 데이비드의 아들에게 선행을 하는 일거양득의 협상을 한 경험을 갖게 됐다. 이처럼 협상은 아름다운 문화이며 사회를 소통하게 하고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주는 훌륭한 가치인 것이다. 미국인들에게 협상은 싸움의 장이 아닌 새로운 창조의 문화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정부수립 이후부터 대립과 싸움질만 하는 정치판은 아예 제켜놓고서라도 지역갈등, 이념갈등, 노사갈등, 빈부갈등, 세대갈등 등 타협은 없고 갈등만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사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최근 우리 도내에서도 쌍용차 문제가 심각한 갈등으로 이와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다. 처해진 환경을 고려해 한발씩 물러나고, 양자의 체면을 살려주고, 파이를 키워서 먹겠다는 협상정신 대신 쇠파이프와 공권력 투입이라는 전쟁을 방불케하는 양상으로 버티기를 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흔히 우리나라 말 중에 “너 죽고 나 죽자! 그래 갈 때까지 가보자!”라는 식의 표현이 있다. 유교문화에 양보를 강조하는 부분이 없지도 않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심성이 특별히 나쁜 것도 아닐진대 왜 이런 타협의 문화가 부재하는 것일까? 이래가지고 글로벌 시대에서 외국인들과의 협상이 가능할까?
이제 우리의 협상문화를 고쳐나가야 한다. 우선 가정교육부터 변해야 한다. 부모의 일방적인 지시를 줄이고 자식의 무모한 떼쓰기부터 사라져야 한다. 그 집안의 형편과 자식의 의견을 충분히 고려하고 토론하여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정규 교육과정에서 합리적인 의사결정의 도출을 위해 협상과 토론을 가르쳐야 한다. 특히 정치인과 지도자들은 협상전문가들의 조언을 들어가며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을 보좌하는 협상전문가까지 있고 협상스킬을 중요한 교과목으로 가르치고 있다.
우리의 경우 업무의 성격상 대립이 심한 정치조직이나 노사관계 조직에 이런 협상전문가가 없다. 협상이 잘 돼야 경제도 산다. 타협을 해도 어려운 이 시절에 힘과 억지를 주무기로 너와 내가 다 같이 죽자는 비이성적이고 전투적인 문화는 하루속히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할 것이다. /윤이중 한국무역협회경기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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