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헌법재판소에 대한 물량 공세가 상상을 초월한다. 민주당은 언론관련법의 권한쟁의 심판 청구와 방송법 효력정지가처분 신청 등을 헌법재판소에 내놨다. 이의 변호사 선임에만 300명이 넘는 ‘매머드급’ 공동 변호인단을 구성했다. 법조사상 전례가 없다.
전례가 없는 괴이한 현상은 또 있다. 이른바 ‘언론악법 원천무효 민생회복투쟁위원회’를 엊그제 만들어 발대식까지 가졌다. 변호사야 300명을 선임하든 500명을 선임하든 나무랄 것까진 없다. 문제는 길거리 행보다. 방송법 등의 무효를 주장하는 시국 집회와 함께 1천만명 서명운동 등을 벌인다는 게 민주당의 100일 장정 계획이다. 첫날은 정세균 민주당 대표 등이 영등포역이며 신촌 일원을 돌았다.
방송법의 그간 논란을 여기에 새삼 옮길 필요는 없다. 민주당이 낸 가처분 신청의 핵심은 내용이 아니고 국회 통과 과정서 발생된 재표결에 하자를 주장하는 것이 골자다. 당초 의결정족수 미달인 줄 모르고 붙인 표결을 취소하고, 재표결로 의결한 것이 일사부재리 원칙에 저촉되느냐, 안 되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이엔 의결정족수가 미달된 의결은 원래 표결이 성립 안 된 것이므로 재표결을 해도 상관없다는 견해와 상관이 있다는 견해가 맞서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기다리게 됐다. 참으로 묘한 것은 말썽을 낳게 된 경위다. 사회를 맡았던 이윤성 국회 부의장의 착각이 있었다. “투표를 종용하십시오”라는 국회사무처의사과 직원의 말을 “투표를 종료하십시오”로 잘못 듣고 정족수가 미달된 표결을 해 결국 발목 잡히는 동티를 낳은 것이다.
어떻든 문제는 이제 헌법재판소의 판단만이 남았다. 그러면 모두가 조용히 기다리는 것이 순리다. 여야는 더 말할 게 없다. 한데,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나오기 전에 원천 무효를 주장하는 길거리 선전선동은 뭔가, 헌법재판소를 윽박지르는 것이다. 앞으로 16개 시·도당과 210여 지역위원회를 거점으로 언론법 원천무효운동을 강화한다니, 헌법재판소에 대한 물량공세가 더 치열할 전망이다.
감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재판이 걸린 사안은 말을 삼가는 것이 원칙이다. 재판에 영향을 주고자 하여 간여해서는 안되는 게 철칙이기 때문이다. 정 할 말이 있으면 법정에 나가 진술하는 것이 통념이다. 하물며 여느 사건도 아닌 입법부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생각해 보라, 방송법 등의 표결이 무효하다는 판결을 헌법재판소에 구해놓은 당자가 “원천무효”의 주장을 판결에 앞서 벌이는 길거리 선전선동은, 재판을 다분히 압박하는 것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오도된 여론으로 재판을 왜곡시키고자 했던 전철 또한 없지 않다.
가관인 것은 선전선동에 덤 삼아 “한나라당이 언론 장악으로 장기집권에 눈이 멀었다”고 하는 악선전이다. 한나라당에 대한 악선전이기보단, 언론을 모독하는 악선전이다. 민주당 정권 자신이 과거에 몇몇 신문방송과 유착됐던 사실이 있어 그런진 몰라도, 권력에 장악당할 언론은 없다. 전근대적 발상에 머문 그 같은 수준의 생각이 역시 헌법재판소를 괴롭히는 길거리 행태의 원인일 것이다.
‘언론악법 원천무효’라면서 이와는 동떨어진 ‘민생회복투쟁위원회’를 찍어다 붙인 것은 상술이다. 국회에 산적해 있는 것이 민생의안이다. 국회의원의 직무에 속한 민생의안은 팽개쳐 놓고, 길거리에서 떠드는 민생회복 투쟁은 삼척동자도 간파할 정치적 기만이다.
앞으로가 걱정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만약 민주당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라면, 이른바 길거리 투쟁이 주효했다고 보아 쾌재를 부를 것이다. 또한 헌법재판소가 장외투쟁에 영향을 받았다는 세간의 오해를 살 수 있어 이 역시 예삿일이 아니다. 반대로 민주당의 청구를 기각하면, 그땐 또 무슨 트집을 잡을지 모른다.
민주당이 정녕 헌법기관인 헌법재판소의 기능을 존중한다면 ‘막가파식’ 길거리 투쟁을 그만두고 당장 철수하는 것이 마땅하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자리다. 연이나 보기 거북한 길거리 모습이 한두 번도 아니고 정말 역겹다. 정세균 대표는 거리의 시민들이 자신을 과연 어떻게 대했는가를 냉정히 돌아보는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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