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위자료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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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이옥형 판사가 “불법행위의 피해를 본 어린이의 위자료를 어른보다 높게 책정해야 한다”는 새 원칙을 제시했다. 교통사고로 수년간 치료받다 숨진 A양의 가족이 가해 차량 측 보험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재판에서다. A양은 네 살이던 2005년 왕복 2차로 도로 가에 주차된 부모의 차 근처에서 놀다가 지나던 승용차에 치여 중상을 입고 입원 치료를 받던 중 2007년 숨졌다.

이 판사는 어린이의 피해액이 어른보다 반드시 적다고 봐야 할 근거가 없는데도 실제 보상에서는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선 어린이가 사고로 크게 다치면 성인보다 오랜 기간 고통을 감수해야 하고, 목숨까지 잃게 된다면 친구관계, 학교생활 등 아동·청소년기에 마땅히 누릴 생활의 기쁨을 잃게 된다는 점에서 피해가 더 크다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사고와 관련한 손해배상액은 병원 치료비, 20∼60세 사이의 수입 상실분인 일실수익, 위자료 등 세 가지를 합쳐 산출한다, 성인은 현재의 직업 소득을 기준으로 하지만 어린이는 무조건 도시 일용직 노동자 평균 임금을 기준으로 일실수입을 계산한다. 이 판사는 이를 두고 “아동의 직업 적성과 소질, 가능성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최소한의 수입을 얻을 것을 전제로 일실수입을 산정하는 것은 피해자인 아동에게 가혹하다”고 지적했다.

도시 일용직 노동자의 임금을 기준으로 하는 것 외에 불합리하다고 지적한 점은 또 있다. 법원이 채택한 일실수입 계산법은 미래 소득을 중간 이자를 공제하는 방식으로 현재의 가치로 환산하기 때문에 피해 아동이 어릴수록 일실수입 총액이 적어지게 된다.

예컨대 피해자가 현재 성인인 20세라면 일용 노동자의 월평균 소득인 146만원을 바로 받지만 5세 어린이라면 15년 뒤에 받을 146만원을 현재의 가치로 환산해 이보다 액수가 훨씬 적어진다. A양도 만약 20세가 된 해에 사고가 나 숨져 일실수입이 2억3천만원이었겠지만 6살에 숨져 일실수입이 1억7천만원으로 줄어들었다.

어린이의 기본권 침해가 성인보다 크다고 선고한 이옥형 판사의 판결은 합당하다. 앞으로 어린이가 관련된 모든 재판에서도 이옥형 판사의 판결이 적용돼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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