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독재+민주화운동=선진화로

우리의 지난 현대사는 독재와 민주화의 갈등이었다. 이승만의 자유당 독재는 정치독재였고, 박정희의 3·4공 독재는 개발독재였다. 민주화 투쟁 또한 자유당 정권에 대한 독재 저항이 민주화투쟁의 전반부라면, 3·4·5공에 대한 독재 항거는 민주화투쟁의 후반부라 할 수 있다. 다만 후반부 민주화투쟁 중 박정희의 3·4공, 신군부 중심의 전두환 독재를 통틀어 1·2·3기로 나누면, 개발독재는 3·4공(1·2기)만 해당된다. 신군부를 비롯한 전두환 5공 독재는 개발독재이기 보다는 정치독재의 성격이 짙다.

자유당 정권에 대한 저항, 즉 전반부 농경사회의 민주화 투쟁 산물이 제2공화국의 (구)민주당 장면 정권이다. 전반부 민주화 투쟁을 일일이 여기에 열거하긴 어렵다. 4·19 의거가 마지막 결정판이었던 것만 밝혀둔다. 그러나 2공의 민주화는 실패했다. 데모 덕으로 들어선 정권은 데모 등살에 망했다. 민주당 신·구파의 영일이 없는 정쟁속에 거리는 날마다 갖가지 데모로 넘쳐, 심지어는 국회의사당에 난입하기도 했다. 보릿고개며 사태가 난 실업자 등 민생 문젠 철저히 외면됐다.

이에 들고 일어난 5·16 군사정변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총칼이 무서워서만이 아니다. 민생고 해결을 제일 먼저 내건 혁명공약의 국민적 용인 정서가 사회저변에 깔렸었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는 국권 찬탈의 반란은 헌정을 중단하는 대역죄다. 그러나 당시의 정변은 논리적 문제이기 보단, 현실적 문제의 시각이 우선했다.

민주화운동의 활기가 대중적으로 파급된 것은 절대적 빈곤이 추방된 1970년대 초반부터다. 중화학공업, 제철 및 조선산업 등 기간산업의 산업사회 발달이 뿌리내렸을 무렵이다.

이제 이 글의 주제인 개발독재와 민주화운동에 접근하고자 한다. 한 가지만 더 말하자면 자유당 독재나 신군부 등 5공 독재는 개발독재가 아닌 정치독재이므로 여기선 논외라는 점이다. 박정희의 개발독재는 외형상 민정으로 이양된 3공과 유신체제의 4공으로 장장 18년이다. 민주화운동사로 보면 앞서 밝힌 것처럼, 민주화 투쟁 후반부의 1·2기에 해당한다.

우리 나라가 세계적인 경제대국은 아니어도, 경제강국 대열에 올라 이만큼이라도 먹고 사는 것은 개발독재가 닦은 경제기반에 기인한다. 부정될 수 없는 역설적 사실이다. 아울러 민주화 투쟁 또한 간곤한 가운데서도 줄기차게 이어졌다. 김대중(DJ)·김영삼(YS), YS·DJ는 민주화 투쟁의 두 쌍끌이었다. 민주화 투쟁은 개발독재가 더욱 오만해질 수 있었던 것을 막은, 경고적 약효가 컸다. 유신체제의 종언 역시 부마(釜馬)사태 등 민주화 투쟁의 영향이다.

독재와 민주화의 갈등으로 점철된 지난 현대사에서 개발독재와 이에 항거한 민주화운동 양 축은 모두 성공했다고 보는 평가가 가능하다. 성공한 개발독재, 성공한 민주화 투쟁이다. 사실(史實)은 사실(事實)에 입각돼야 하고, 평가는 국리민복이 잣대가 돼야 한다고 보는 관점에서 그러하다.

이에 필요한 것이 그간의 갈등에서 앙금을 털어내는 용서와 화해다. “아버지 시절에 여러가지 피해를 입으시고 고생하신 것을 딸로서 사과한다”고 한 것은 일찍이 박근혜가 DJ를 찾아가 한 말이다. 이에 DJ는 “그렇게 말해주니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이젠 새로운 시대다. 정치독재나 군부가 들고 나오는 헌정상 패륜은 말할 것 없고, 개발독재도 더는 용인되지 않는다. 아울러 더 이상의 민주화 투쟁 또한 명분이 없다. 민주화운동의 시기 역시 갔다. 민주화운동은 필연적으로 실정법을 어길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른바 운동권에서 설치는 위법행위 양상이 이를 모방하는 것이지만 거리가 멀다. 집단이익에 민주화를 빗대는 것은 민주화운동에 대한 모독이다.

지금은 선진화로 가는 시대다. 우리 나라를 선진국 대열로 올려놔야 하는 것이 이 시대 사람들의 소임이다. 특히 정치권은 더 명심해야 할 소명이다. 여야가 다를 바 없다. 화해와 용서는 과거지사에 대한 매듭이다. 다툼은 앞으로 또 시작된다. 정권을 다투는 정치권에 싸움을 하지 말라는 것은 무리다. 다만 싸우더라도 선진화 다운 성숙된 싸움을 해야 민심을 얻는다.

산업사회를 넘어 정보화시대다. 한국정치사가 새 이정표에 들었으면, 새 정치 모델을 보여야 신선하다. 과거형에 머물러선 미래가 없다. 정치인들은 이를 위해 고민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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