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안, 이렇게 본다

개헌론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국회 헌법자문위원회가 국회의장에게 낸 개헌안 보고서는 개헌 논의 개시의 공식화다. 보고서는 이원집정제와 4년 중임 정·부통령제 등 복수안이다.

이원집정제는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권한을 나눠 갖는다는 게 골자다. 대통령은 5년 단임 직선이나 사실상 상징적인 국가 원수다. 보고서의 개헌안은 대통령이 국회해산권·전쟁선포권·강화권·해외파병권·조약비준권·계엄선포권·법률안 서명 및 공포권 등을 갖는다.

그러나 대통령의 이런 권한은 실질적 권한이 아니라 형식적 권한이다. 왜냐면 국회에서 선출하는 국무총리가 행정부 수반으로 실질적 권한을 갖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권한은 다만 절차상의 요식에 그친다.

내각 구성권을 비롯, 경제·치안·외교·국방·통일을 포함한 국정 전반의 최고 책임자가 국무총리다. 대통령의 권한은 국무총리의 제청에 의해 요식행위로 행사될 뿐이다. 예를 들면 국회는 총리 및 내각 불신임권을 결의할 수 있는 데 비해 국무총리는 국회 해산 제청권을 갖는다. 따라서 국무총리가 국회 해산을 제청하면 대통령은 자동으로 재가하게 된다.

이원집정제는 분권형 대통령제라지만 아니다. 사실상의 내각책임제다. 문제는 아무 권한이 없는 5년 단임제 직선 대통령에 누가 출마하고, 또 무슨 직선의 의미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개헌안 보고서가 밝힌 또 하나의 국가 권력구조는 4년 중임 정·부통령제다. 제1공화국의 자유당 이승만 정권 때 실시된 제도다. 대통령중심제에서 부통령은 아무 할 일이 없다. 이시영 초대 부통령은 “‘호위소찬’으로 국록만 축낼 수 없다”면서 부통령직을 사퇴했다. 부통령은 대통령 궐위 시 대통령직을 승계한다. 이 때문에 일어난 테러가 있다. 자유당의 이승만 대통령과 함께 당선된 민주당의 장면 부통령 저격 사건이다.

주목되는 것은 이원집정부제나 4년 중임 정·부통령제나 모두 국회를 상시국회와 양원제로 한다는 점이다. 상시국회로 하는 것은 납득이 간다. 그러나 양원제는 이미 실패를 맛본 제도다. 제2공화국이 내각책임제에 양원제를 실시했다. 참의원(상원)과 민의원(하원)을 두었고, 의정 주도는 민의원이 가졌었다. 그러잖아도 지금 국회의원 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 국민적 원성이다. 국회의원 수가 너무 적어도 문제지만, 많은 건 사실이다. 양원제 부활은 생뚱 같다.

현행 헌법은 1987년의 제8차 개헌 헌법이다. 헌정사상 가장 수명이 길다. 5년 단임제와 대통령의 권력 집중에 문제가 많다는 것이 개헌론자들이 드는 개헌의 이유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떤 제도든 완벽할 순 없다. 분권형이라고 하는 이원집정제도는 국무총리, 4년 중임의 정·부통령제 역시 대통령에게 여전히 권한이 집중됐다.

5년 단임은 연임이 안 돼 레임덕 현상이 빨리 나타난다고 한다. 임기 말 국정 장악력 위축의 폐해가 심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4년 중임제도 중임의 임기 말 레임덕을 피할 수 없다.

요컨대 인식의 문제다. 권한의 집중은 책임의 집중이다. 반대로 권한의 분산은 책임의 분산이다. 이의 집중과 분산의 선택은 각자의 판단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 어느 것도 절대적 공동선은 있을 수 없다. 정작 중요한 것은 운용의 묘다. 운용의 묘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제도도 효율을 살리지 못한다. 반면에 운영의 묘를 살리면 설령 제도가 미흡해도 효율성을 높인다.

현행 헌법이 비록 미흡하긴 해도 큰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래됐으니까 그냥 바꿔보자는 생각을 갖는다면 이유가 될 수 없다. 그러나 개헌 논의의 공론화를 굳이 막는 것도 민주주의가 아니다. 걱정되는 것은 정치권의 개헌 논의를 국민사회가 어떻게 볼 것이냐는 것이다. “언제는 헌법이 잘못돼 정치를 그 모양으로 했느냐?”는 의문이 성립된다.

현행 헌법은 헌정사상 제6공화국이다. 국가 권력구조를 개편하는 제9차 개헌이 이뤄지면 제7공화국으로 들어선다. 개헌 논의가 분분할 것 같다. 차기 대통령을 꿈꾸는 대선 주자군들은 4년 중임의 정·부통령제를 고집하고, 당 중심의 의회주의자들은 이원집정부제를 선호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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