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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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가족부가 지난달 입법예고한 ‘사회복지사업법 개정법률안’에 ‘부랑인·노숙인’ 대신 ‘홈리스(homeless)’라는 영어 형용사를 도입키로 한 것은 재고돼야 한다. “부랑인·노숙인의 이미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없애기 위한 것”이라고 이유를 들었지만 문제될 게 많아서다.

홈리스란 단어를 법률용어로 도입한 까닭이 일견 이해는 된다. 피치 못할 여러가지 사정으로 집을 잃고 거리에서 생활하는 안타까운 처지의 사람들을 호칭으로나마 배려해 주고 싶은 심정이 이 단어를 도입하게 된 동기라고 보기 때문이다. 사실 노숙인·부랑인이라는 단어가 일반 시민들에게 주는 느낌은 좋지 않다. 하지만 홈리스라는 단어를 써야하는지는 의문스럽다.

우선 홈리스라는 말은 국적불명의 단어라는 인상이 짙다. 홈리스는 형용사로 단독으로는 노숙인·부랑인을 뜻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의미는 통할지 몰라도 실제로 홈리스라는 단어를 따로 떼어서 사람을 뜻하는 말로 쓰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기껏해야 홈리스는 ‘노숙’ 정도만을 뜻하는 데 그친다.

굳이 조어를 한다면 ‘홈리스人’이 맞을 터이지만 어색하다. 어법에 맞지 않는 단어를 굳이 법률용어로 사용할 필요는 없다. 또 홈리스가 노숙인·부랑인에 대한 어감을 순화한 표현이라는 데도 동의하기 어렵다. 홈리스는 영어 단어이기 때문에 당연히 시민들의 의식 속에 형성된 어감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발상이라면 실업자·실직자는 ‘잡리스(jobless)’ 로 쓰자는 말도 나올 수 있다.

홈리스 외에는 적당한 말이 없다는 게 다수 의견이라 해도 복지부가 슬그머니 이 단어를 법률용어로 끼워 넣은 것은 경솔했다. 먼저 만들어 놓고 사용을 강요하는 것은 공무원들의 행정편의주의다.

만일 홈리스 외에는 대안이 없다면 국어연구원, 대학 등 기관에 자문을 구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또 그래야 공감을 산다. ‘노숙인·부랑인’이 주는 나쁜 인상을 지울 수 있는 단어가 찾아진다면 마땅히 그를 사용해야 한다. ‘홈리스’를 반대하는 한글단체 등이 적합한 단어를 제시했으면 좋겠다. 요즘은 초·중·고등학생들도 아주 기발한 의견을 내놓는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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