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족간 성폭력’ 대책은 없나
최근 과천에서 10대 여고생이 의붓할아버지, 아버지, 삼촌, 고모부 등 일가족 5명에게 수년간 성폭행을 당해온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준 사건이 발생했다. 이처럼 친족간 성폭력은 누구나 입에 올리기 꺼려하지만 해마다 전체 성폭력 중 차지하는 비율이 늘고 있어 더 이상 덮어둘 수 없는 사회 문제가 됐다. 이에 친족간 성폭력의 심각성과 대책을 진단해 본다.
◇해마다 증가하는 ‘인면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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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 따르면 의붓할아버지 B씨는 지난 2003년 손녀인 A양이 부모의 이혼으로 자신의 집에 거주하게 되자 복통을 치료해 준다며 성추행을 일삼다 지난 2005년부터 매달 A양을 성폭행한 혐의다.
이에 앞서 인천에서는 지난 3월 친딸과 친여동생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D씨(40)와 아들(16)이 입건되기도 했다. D씨는 부인과 이혼 뒤 지난 2004년 6월부터 자신의 집에서 친딸(9·초교 3년)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했으며, 중학생인 아들 또한 2년 전인 2007년부터 친여동생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함께 용인에서는 지난 7월 정신지체 여성을 양녀로 삼은 뒤 3년간 성폭행을 일삼은 혐의로 E씨(69)가 구속되는 등 친족간 성폭력 사건이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지난해 이뤄졌던 1천430건의 성폭력 상담건수 중 14.3%에 해당되는 204건이 친족에 의한 성폭력 상담인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아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 가운데 직장내 성폭력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수치다.
이와 함께 수원여성의전화 도내 상담통계를 보면 전체 성폭력 가해자 중 친족에 의한 경우가 지난 2006년 9.8%(31건)에서 2007년 16.2%(41건), 지난해 15.1%(38건)에 이어 올해 상반기에만 17.7%(26건)를 차지하고 있어 친족간 성폭력이 해마다 증가추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드러나지 않은 사례를 감안하면 실제 성폭력 건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집안 망신될까 ‘쉬쉬’, 더욱 커지는 고통
도내에서 일어난 친족간 성폭력 사건의 공통점이 있다면 성폭력이 오랜 기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청소년대상 성범죄자 1천839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 범죄가 2회 이상 지속된 경우가 친족이 아닐 경우에는 16%였지만 친족관계에서는 무려 70.4%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일반적으로 피해자들은 성폭력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성폭행이나 성추행을 당한 뒤 사춘기를 지나면서 이를 인지하게 되며 이후에도 이를 밖으로 알리지 못하기 때문에 2차 피해가 일어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가족들의 부적절한 대응은 피해자를 더 절망의 늪으로 빠지도록 할 위험이 있다. 성폭력 상담가들은 가해자 외의 다른 가족이 성폭력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이를 수치스럽게 생각해 외부에 알리지 않고 무마하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치유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경기 여성·학교폭력 피해자 원스톱지원센터 김향숙 팀장은 “오히려 피해자의 행실을 문제삼거나 왜 얘기를 꺼냈냐며 질타하는 가족들도 있다”며 “피해자들은 자신으로 인해 가정이 파탄나고 친족관계가 무너질까, 부모가 이혼할까 자책감을 갖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아주대 의과대학 정영기 교수는 “친족간 성폭력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아 지속적이고 만성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며 “불안감, 공포감, 불신, 우울증, 불면증 등 수많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증상들이 오랜 시간 피해자를 괴롭힌다”고 지적했다.
◇엄격한 법집행만이 해결책
흔히 친족 성폭력의 가해자들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거나 폭력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되지만 전문가들은 이들 역시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다만 불안정한 환경이나 위기상황에서 이같은 일이 벌어질 확률이 높다는 것.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이혼이나 실직 등 위기에 처했을 때, 사회적 네트워크 없이 자녀와 고립돼 생활할 때 성범죄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며 “위기가정을 사회적 차원에서 지원하고 끌어안는다면 증가하는 친족간 성폭력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엄격히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현행법상 친족 성범죄는 가중처벌돼 강간을 한 경우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 강제추행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해지지만, 친족관계이다 보니 고소를 하지 않거나 중간에 합의를 하는 등 유야무야되는 경우가 상당수이기 때문이다.
수원여성의전화 이연희 성폭력 상담부장은 “지금도 처벌 수위가 그리 높지는 않지만 이마저도 빠져나갈 구멍이 너무나 많다”며 “친족간 뿐만 아니라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가 용서받을 수 없는 심각한 사건임을 인지하도록 원칙적으로 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예리기자 yell@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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