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봄 도다리(주꾸미), 여름 민어·가을 전어·겨울 숭어라고 했다. 전어는 남해안, 서해안 연안에서 많이 잡힌다. 주로 얕은 바다에서 논다.
플랑크톤 등 각종 유기물이 많은 강 하구를 좋아한다. 산란기는 4·5월, 알을 낳고 나면 몸이 푸석하다. ‘봄 전어는 개도 안 먹는다’는 말이 나온 이유다. 하지만 가을엔 내년 봄 산란을 위해 다시 열심히 먹는다. 오동통 살이 찐다. 지방이 봄의 3배가 넘는다. ‘가을 전어’란 말이 그래서 생겼다. 회로 먹든, 구워 먹든 고소하다. 회 무침도 좋다. 깨소금 맛이다.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갔던 며느리도 돌아온단다.
전어(錢魚)의 ‘전’자는 돈(엽전)을 뜻한다. 조선후기 서유구가 쓴 ‘임원경제지’에 “전어는 기름이 많고 맛이 좋아 상인들이 염장해서 파는데, 귀족·천민을 가리지 않고 돈 아까운 줄을 몰랐다. 그래서 ‘전어(錢魚)’라고 했다”고 나와 있다.
이때 전어는 전어회나 전어구이가 아니다. 소금에 절인 자반전어나 전어속젓 혹은 전어창자로 담근 돔배젓이다.
전어새끼는 전어사리라고 부른다. 전어사리로 담근 젓이 엽삭젓(뒈미젓)이다. 전어내장을 모아 담근 젓은 전어 속젓이다. 안도현 시인이 “쓰디 쓴 눈송이만 묻어둔 내장(內臟) 한 송이를 남겨 놓으니 이것으로 담근 젓을 전어속젓이라고 부른다”라고 말한 그 젓갈이다.
일본에선 전어를 ‘고노시로’라고 부른다. 초밥에 많이 쓰지만, 가시가 많아서인지 구워 먹는 것은 즐기지 않는다. 뼈째 썰어 먹는 회는 더욱 그렇다.
회를 뼈째 썰어 오도독, 오도독 잘도 씹어 먹는 한국인들은 유별나다.
“전어 한 쌈에 / 달빛 한 쌈 / 작년에 떠났던 가을 / 파도에 실려 돌아오네 / 가족들 모두 병이 없으니 / 떠난 것들 생각에 밤이 깊어도 좋으리 / 창 밖에 / 먼 곳 풀벌레 가까이 다가오누나.” 윤상운의 시 ‘전어와 달빛’이다.
가을에 전어를 못 먹으면 한 겨울에도 가슴 시리다고 하였다. 어느 여름날, 나이 일흔에 죽을 날만 기다리던 노인이 “죽는 것은 괜찮지만, 올 가을 전어 맛을 못 보고 죽는 게 억울하다”고 탄식했다는 우스갯말이 실감난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야흐로 가을이다. 가족들, 친구들과 전어를 안주 삼아 덕담을 나누면 딱 제격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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