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한가위 명절의 세시풍속 가운데 ‘소놀이’와 ‘반보기’가 있었다. 두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 그 위에 멍석을 덮어씌워 소 흉내를 내며 노는 게 ‘소놀이’다. 농악대는 이 소를 앞세우고 마을의 부잣집이나 그 해 농사가 잘된 집을 찾아간다. 농악대가 소춤을 추며 노는 동안 집 주인은 술과 안주를 한 상 차려 내온다. 소놀이패 일행은 해가 저물녘까지 마을의 여러 집을 돌아다니며 하루를 즐긴다.
‘소놀이’는 부잣집에서 농사일로 고생한 마을 사람들을 위해 한턱 내는 풍속이다. 온 마을이 더불어 잘 살자는 상부상조의 정신이 담겨 있었지만 지금은 민속놀이로만 전해진다.
‘반보기’는 시집 간 딸이 마음대로 친정나들이를 할 수 없었던 시절의 풍속이다. 시댁에서 한가위를 치른 딸과 친정 식구가 약속된 장소에서 만나 회포를 풀었는데 중간쯤에서 만난다고 해서 ‘중로상봉(中路相逢)’이라고도 하였다. ‘반보기’는 하루 이틀 친정나들이를 하는 ‘온보기’로 발전했다. ‘근친(覲親)길이 으뜸이고 화전(花煎) 길이 버금이다’란 말이 있을 정도로 추석 때 친정나들이는 옛날 여성들에게 기쁨이자 희망이었다. 시집 간 딸은 출가외인이라고 친정나들이가 쉽지 않았지만 추석 때만큼은 예외였다.
요즘은 달라졌다. 딸이 남편을 앞세우고 친정을 찾아온다. ‘명절 때 처가댁을 안 가면 일년 내내 아내의 눈총을 받는다’고 남편이 푸념하는 세상이 됐다. 아이러니한 얘긴 추석을 맞는 며느리의 하소연이다. 같은 딸이지만 시댁과 친정에서의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여권이 신장되긴 했지만 차례상 준비, 음식 만들기는 여전히 여성들의 몫이고 남성들은 가부장적으로 그것을 누린다. 그런 연유로 ‘명절 증후군’이라는 신종 질환까지 생겨 ‘명절 증후군 예방법’ ‘명절 스트레스 해소법’ 등이 나왔다.
추석이나 설날 등 명절은 조상에게 감사하는 뜻도 있지만 산 사람이 즐겁자는 게 더 큰 의미다. 여성들이 건강한 명절을 보내기 위해선 남편들의 역할도 필요하다.
이른바 ‘민족의 대이동’ 때 교통체증에 시달리는 자식들을 위해 부모들이 도시로 가는 ‘역귀성(逆歸省)’도 일반화된 시대다. 남성들이 송편을 빚는 모습은 보기에 좋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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