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가 새겨진 유물

 

발굴을 할 때마다 내 가슴은 두근거린다. 이번엔 땅 속에서 어떤 유물이 나올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지난 1983년, 충주댐 수몰 지구에서 발굴된 반달돌칼,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하게 닳아 있는 그 반달돌칼을 통해 2천5백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그곳에서 살다가 고인돌에 묻힌 한 할머니의 삶을 가슴에 느끼게 된 것은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발굴이 주는 짜릿함은 내가 고고학을 선택하게 된 직접적 계기이기도 하다.

 

고고학을 선택한 지 30여년. 그동안 나는 많은 유물들을 발굴했다. 지금까지 발굴한 유물 중 내게 큰 의미로 남아 있는 것은 글자가 새겨진 유물들이다. 특히, 1990년에 있었던 이성산성의 3차 발굴에서 명문목간이 출토되었을 때의 감동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戊辰年正月十二日前南漢城道使村主(무진년정월십이일전남한성도사촌주)…’ 이 명문목간은 이성산성을 6세기 중엽에 신라가 쌓았으며, 당시 이성산성의 이름이 ‘남한성’이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올 여름, 연천에 있는 고구려성인 호로고루를 발굴하는 도중 ‘상고(相鼓)’라는 명문이 새겨진 토기편이 출토됐다. 명문이 없었다면 그냥 구멍 뚫린 토기편으로 분류됐겠지만, 토기에 새겨진 ‘상고’라는 명문으로 인해 이것이 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상고’는 발굴에서 출토된 최초의 고구려 악기로 향후 한국음악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현재 국악박물관에서 복제 작업을 추진하고 있는 ‘상고’, 진군을 독려하기 위해 전쟁터에 울려 퍼졌을 고구려군의 북소리를 머지않아 들어볼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금세기 최고의 발굴이라고 할 수 있는 무령왕릉의 발굴도 무덤 속에 사마왕이라 새겨진 묘지석이 없었더라면, 무덤의 주인공이 무령왕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경주의 황남동 98호분처럼 ‘송산리 7호분’으로 불렸을 것이다.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기록 문화유산 중 자국에서 소장하지 않은 것을 지정한 유일한 문화재가 있다. 바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물인 ‘직지’가 그것이다. 프랑스에서 보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가 신청하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직지. 1985년 이전에는 그 직지를 간행한 ‘흥덕사’의 위치가 어디인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1985년 3월1일, 청주에서 고물상을 하는 조모씨가 공사 현장에서 버린 흙더미 속에서 절에서 쓰는 북인 청동금구(靑銅禁口) 한 점을 발견했다. 놀랍게도 그 금구에는 ‘흥덕사(興德寺)’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었다. 관련 학계는 이 소식을 듣고 발칵 뒤집혔다. 흥덕사는 바로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금속 활자보다 63년이나 앞서는 1377년, 불교 서적 ‘직지(直指)’가 인쇄된 사찰이었기 때문이다. 흙을 파낸 장소는 토지공사에서 사업 중인 청주운천지구 택지개발사업 현장이었다. 즉각 공사가 중단되고,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사지에서는 금구 외에도 동종, 금강저, 향완, 치미 등 많은 양의 유물이 출토됐다. 결국 이 절터는 보존됐고, 그 한쪽에 고인쇄박물관이 건립됐다.

 

이것이 바로 문자의 힘이다. 유물에 새겨진 문자 기록은 유물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데 있어 결정적이다.

 

내일은 한글날.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역사상 가장 우수한 문자의 탄생을 축하하며 잔치를 벌인다는 한글날에 즈음하여 문자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국경일인 한글날이 조속히 공휴일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푸른 가을 하늘에 띄운다. /심광주 토지주택박물관 문화재지원팀장 전 토지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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