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좌석 배열의 표시다. 가·나·다 순으로 할 수도 있고 1·2·3 순으로도 할 수 있다. 하필이면 A·B·C 등 알파벳 순이었다. 그도 한글날이다. 더욱이 세종대왕 앞이다. 지난 9일 서울 광화문서 가진 세종대왕 동상 제막식 자리에서다.
정부에서 하는 일부터가 이 모양이다. 영어 기갈증에 들린 것 같다. 지난 주엔 언론의 영어사대주의를 나무랐다. 이번 주는 정부의 영어사대주의를 꾸짖겠다. 따지면 정부 발표문부터가 영어투성이다 보니, 이를 보도하는 언론도 영어투성인 것이다. 물론 언론은 보도 과정에서 마땅히 걸러낼 것은 걸러내야 하지만, 원인제공은 정부 쪽이다.
세종대왕 어전서 ‘ABC’라니
전부터 이랬다. 노무현 정부 또한 반미 경향을 띄었으면서도 영어사대주의는 버리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 역시 영어사대주의에 빠져 있다. 영어사대주의 중독 현상이 심화돼 간다.
도대체가 ‘에코스테이션은 클린하우스를 벤치마킹하는 것으로…’ 이따위 소릴 알아들을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대한민국 정부가 대한민국 국민을 상대로 시책을 펴면서 대한민국 말을 써야지, 배알도 없이 무슨 영어를 남발하는가 말이다. 친서민정책은 시장골목만 찾아 다닌다고 되는 게 아니다. 정부가 서민층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정부가 하는 말을 서민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 도시, 무슨 말인지 모를 소릴 해서는 되레 반감만 산다.
그렇잖아도 길거리에 영어가 범람한다. 외래어도 한몫한다. 외래어 얘기 좀 해야겠다. 담배의 니코틴(nicotine)은 1560년 주포루투칼 프랑스대사 장 니코(Jean nicot)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전래된 담배 씨앗을 가지고 귀국해 그의 이름을 학명으로 딴 데서 유래한다. 버스(bus)는 합승마차라는 라틴어 옴니버스(omnibus)가 자동차산업 발달로 영어화되면서 끝머리만 발음해 버스가 됐다. 머리를 깎는 바리캉(bariqund) 기계는 프랑스 제작사의 명칭이다. 비스켓(biscuit)은 라틴어에서 두번이라는 bis와 굽는다는 cuit의 합성어로 두번 굽는단 뜻이다. 스타디움(stadium)은 그리스의 고대경기장 스타디온(stadion)에서 나온 말이다. 아카데미(academy)는 소크라테스 등이 토론을 벌였던 아테네 시내 아카데모스(academos) 공원에서 유래됐다. 올림픽(olmypic)은 그리스 신화의 영산 올림포스(olympos)의 어미변화다. 위스키(whisky)는 위스키의 원산지인 스코틀랜드 말로 생명수란 뜻이다. 팬(fan)은 신전 참배의 파나티쿠스(fanaticus)란 말이 광신자의 퍼내틱(fanatic)으로 영어화되면서 팬으로 준 말이다.
영어사대주의를 질타하면서 외래어를 장황하게 설명한 덴 연유가 있다. 이 같은 외래어가 넘쳐나는 것은 국어생활의 차용어로, 쉽게 말해서 우리 말 안방을 내준 셈이다. 수치스럽지만 불가피한 외래어로도 모자라 토착화 안 된 생영어를 신외래어로 만들지 못해 안달이다.
민초 외면하는 정부의 ‘영어중독’
정부가 이 모양이다 보니 지방자치단체도 덩달아 영어를 마구 써대 주민들이 어리둥절할 지경이다. 그 예를 구차하게 열거할 것 없이 한 가지만 들겠다. 김문수 경기도지사에게 기대하고자 한다. ‘광교테크노밸리’를 꼭 그렇게 불러야만이 국제사회에 명함을 내미느냐는 것이다. ‘광교기술단지’나 ‘광교기술마을’로 부르면 안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갖는다.
아무튼 세종대왕께서는 나랏말씀이 중국과 달라 뜻을 못 펴는 백성을 위해 한글을 만드셨는데, 지금의 민초들은 세계적으로 훌륭한 한글을 두고도 벼슬하는 나으리들이 써대는 영어 바람에 나랏말씀이 영어와 달라서 고통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서울에 와 있는 외국인 한국어교육자가 중국·캐나다·러시아 등 19개국 사람들이다. 장차 지구촌의 한글 전도사들이다. “왜 훌륭한 한글말 놔두고 이상한 영어말을 많이 쓰는지 모르겠다”는 것이 이들의 말이다. 세종대왕 동상 제막식 좌석을 알파벳으로 써댄 영어사대주의 중독자들은 반성해야 한다. 아름다운 우리말 쓰기는 영어중독을 추방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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