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 없는 사회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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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標準)은 일상적이고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각종 문제를 편리하게 다루기 위한 합리적인 기준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같은 분야에도 기준이 서로 다른 게 많아 불편을 겪는다.

 

예컨대 의료 서비스의 경우 표준화되지 않은 게 상당수다. 본인이나 가족이 다른 병원으로 옮겨 진료를 받을 때 전 병원에서 받은 검사를 중복해 받게 돼 불편이 크다. 의료기관 사이에 진료 자료가 제대로 호환되지 않아 새로 자료를 입력하기 위해 같은 검사를 다시 받아야 한다. X선 사진은 의료 기관별로 진료 자료의 저장 방식이 달라 병원을 옮기면 다시 찍을 것을 권하는 사례가 많다.

 

옷이나 신발을 살 때 크기를 표시하는 기준이 달라 혼란스럽다. 신발의 경우 같은 사이즈로 표시돼 있지만 브랜드별로 길이나 폭이 다르다. 옷을 구입할 때도 같은 크기로 표시돼 있으나 길이나 둘레가 달라 수선을 해야 된다. 기준이 다른 게 되레 표준으로 착각될 지경이다.

 

특히 세계적 수준의 정보기술(IT) 제품을 생산하고 있으면서도 IT제품 관련 표준화는 요원하다. 휴대용 IT 기기를 새 제품으로 바꾼 뒤 종전에 사용한 충전기, 어댑터를 그냥 보관하고 있는 소비자가 전체의 45%를 넘는다. 새 제품을 사고 난 뒤 기존 충전기 등은 재사용이 안 돼 무용지물이다.

 

휴대용 기기의 충전기 표준화는 이미 세계적인 추세다. 세계 이동통신사업자 연합체인 GSM협회는 올해 초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17개 이동통신사 및 제조업체가 범용 충전기 규격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표준에 맞춰 제품이나 충전기를 생산하기 위해선 비용이 들기 때문에 일부 기업은 의도적으로 표준화를 늦추고 있는 상태다. 휴대전화의 문자 입력 방식도 기계별로 제각각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휴대전화 문자 입력방식의 표준화 논의가 있었지만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이 ‘특허’임을 앞세워 입력 방식 통일에 동의하지 않는다. 기술표준원이 중재를 시도했으나 역부족이다.

 

일치되지 않는 표준은 있으나 마나 한 기준이다. 경제적 손실이 크다. 국가적, 인류적인 자원 낭비다. 의료기관, IT 기업의 표준 사용은 특히 절실하다. 물질문명이 과학화·첨단화될수록 필요한 것이 표준화인데 ‘표준 없는 사회’에서 살고 있어 답답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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