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총리, 무릎꿇다

일본 언론이 연일 한국의 화재방재 미비 실태를 때리고 있다. 지난 15일 오후 6시30분께 부산 국제시장 실내사격장에서 일어난 불로 숨진 10명 가운데, 자국민 관광객 8명이 희생된 참사를 톱뉴스로 다루면서 한국의 만성적 안전 불감증을 꼬집는 것이다.

 

방화(防火) 자재가 성능이 불량한 인화(引火) 자재로 둔갑됐다고도 하고, 스프링클러는 눈가림에 불과해 작동되지 않았다고도 하고, 불나기 8일 전에 안전검사에서 합격된 시설이 불났다는 등 질책성 기사가 넘쳐난다. 대형화재 참사 때마다 국내 언론이 보도한 내용이 그대로 지적되고 있다. 안전 불감증의 고질적 병폐가 이제 국제 망신까지 자초하기에 이르렀다.

 

정운찬 국무총리가 무릎을 꿇었다. 희생자의 시신이 안치된 양산 부산대병원 영안실을 찾아간 정 총리는 일본인 유족 32명에게 무릎을 꿇고 정중히 사과했다. 일본은 우리의 대통령중심제와 다른 내각책임제다. 그렇긴 해도 자국 같으면 행정부 수반인 내각총리대신과 같은 정 총리의 무릎을 꿇은 사과가 어떻게 비쳤을지 궁금하다.

 

때 마침 아키히토(明仁·명인) 일왕을 예방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허리를 95도나 굽혀 인사한 것은 과공(過恭)이라는 구설수가 미국 신문에 보도됐다. 허리를 95도 각도로 굽히는 인사법을 일본에서는 ‘사이게이레’(最敬禮·최경례)라고 한다. 일왕에게만 하는 최고의 절이다.

 

일국의 총리가 일본인 유족인 평민에게 무릎 꿇고 사과했으면 뼈 아프게 여겨야 한다. 대형화재 참사 때마다 지적되곤 하는 화재 방재의 미비는 부산 국제시장 실내사격장에 국한한 게 아니다. 지금도 나라 안 도처에 그 같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잖아도 겨울로 접어들어 날씨가 추워지면서 크고 작은 화재가 잇따르고 있다. 정부 차원의 철저한 일제 화재예방점검이 강도높게 있어야 할 때다.

 

이번 일본인 관광객이 희생된 화재 집단 참사로 한국은 안전대책이 빵점인 나라로 일본 사회에 낙인 찍혔다. 당분간은 일본인 관광객이 줄어들고, 또 관광객이 오더라도 안전대책에 의문을 제기해도 참고 친절히 응대해야 하는 수모를 겪을 판이다./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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