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은 어느 날 보도에 서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을이 운전하는 차량이 보도로 돌진하여 갑과 충돌하였고, 갑은 다리가 골절되었다. 갑은 근처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고, 일정기간이 지난 후 증세가 호전되어 통원치료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해자인 을이 입원기간 동안의 치료비를 지불하지 않아 갑은 계속 입원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갑은 을에게 자신이 받은 모든 치료비에 대해 손해배상청구를 하였으나, 을은 갑이 통원치료를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입원치료를 받은 기간 동안의 치료비는 지급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을의 주장은 타당할까?(대법원 77다1136 판결 참조)
치료비는 불법행위와 ‘상당한’ ‘인과관계’(불법행위를 원인으로 발생한 치료비라는 사실이 상당히 인정될 수 있는 정도의 관계일 것)가 있는 범위 내에서만 배상청구가 가능하다. 여기서 ‘상당성’의 여부를 판단할 때는 당해 치료행위의 필요성, 기간, 그 진료행위에 대한 보수액의 상당성(부상의 정도, 치료내용, 횟수, 의료보험수가) 등 제반사정을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따라서 사고 이전부터 앓고 있던 기왕증의 치료를 위한 비용이나, 과잉치료를 받은 비용은 ‘상당한 인과관계’가 부정된다. 예컨대 전치 4주의 타박상을 입은 피해자가 근 1년간 치료를 한 경우의 치료비, 화상을 입은 피해자가 충수염 및 복막염에 대한 수술을 받은 경우의 그 수술비 등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는 손해라고 보기 어렵다(즉 가해자는 이러한 수술비를 피해자에게 지급할 필요가 없다). 반면 증세의 악화방지나 생명의 연장 등을 위한 조치는 모두 당해 불법행위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는 ‘치료’에 포함될 수 있다.
실무에서 자주 문제되는 것은 경미한 형사사건이나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는 가해자가 합의를 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또는 합의에서 좀 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하여 치료와 관계없이 입원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치료와 관계없는 입원으로 인해 발생한 비용은 불법행위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는 치료비라고 할 수 없으므로, 가해자는 이러한 입원치료비를 피해자에게 배상할 이유가 없다(다만 위 입원이 치료행위와 관계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치료비의 청구를 받은 가해자가 입증해야 할 것이다). 즉 교통사고나 형사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해의 정도 및 치료의 필요성을 따지지 않고 단순히 합의금을 더 받기 위해 무턱대고 입원하더라도, 법원은 그 입원비용을 피해자가 입은 ‘손해’로 인정하지 않을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그런데 위에 제시한 사례처럼 당초 입원치료를 받을 필요성이 있어 입원치료를 받던 중 증상이 거의 완치되어 통원치료가 가능하였으나, 가해자가 치료비를 지급하지 않아 퇴원하지 못하고 계속 입원치료를 한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즉 이 경우 증가된 입원비용은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해 손해배상의무를 다하지 않아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이는 당해 불법행위와 ‘상당한 인관관계’의 범위 내에 있는 치료비로 볼 여지가 많다. 그렇다면 결국 을은 갑에게 이와 같이 증가된 치료비용을 배상할 의무가 있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법원은 불법행위에 기한 치료비 청구에 있어 상당한 인과관계의 범위에 있는 치료비에 대해서만 그 손해배상을 인정함으로서, 조금이라도 더 손해배상금을 받으려는 피해자와 조금이라도 덜 주려는 가해자의 모순되는 요구를 절충하고 있다. 그러므로 어떠한 불법행위가 발생하였을 때 피해자가 치료비를 부풀려 청구하거나 가해자가 당연히 지급해야할 치료비를 막연히 회피하려고 하는 것은, 추후 더 많은 비용 지출과 손해를 발생시킬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게 된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겠다. /손윤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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