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의 혼돈

한비자(韓非子) 좌하편에 나오는 고사다. 그대로 옮긴다. 공자가 노(魯)나라 애공(哀公)과 함께 앉아 있는데 애공이 복숭아와 기장밥을 내려 주었다. 애공이 “드십시요”하고 권하니, 공자는 먼저 기장밥을 먹고 뒤에 복숭아를 먹었다. 좌우 사람들이 모두 입을 가리고 웃었다.

 

이 때 애공이 말하였다. “기장밥은 밥 삼아 먹는 게 아니고 복숭아를 씻는 것이요” 공자가 대답하였다. “저도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하고는 말을 이었다. “기장은 오곡 중에 으뜸가는 것이어서 옛 임금님들 제사를 지낼 때에도 으뜸가는 공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과일엔 외 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복숭아는 하등이어서 옛 임금님들 제사를 지낼 적에 종묘에 들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듣건데 군자는 천한 것을 가지고 귀한 것을 씻는다 하였습니다. 귀한 것을 가지고 천한 것을 씻는단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이어 말한 공자의 결론은 이렇다. “지금 오곡의 으뜸을 가지고 과일과 외 가운데 하등을 씻는다면 이는 상급을 가지고 하급을 씻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의로움에 방해된다고 생각하므로 감히 종묘 제사의 공물인 기장보다 먼저 먹지 않았던 것입니다” 공자의 말을 들은 애공과 신료들은 비웃었던 것과는 달리 그만 숙연하면서, 애공은 공자를 향해 “중니(공자의 자)는 듣던대로 과연 현자십니다”하고 미소 지어 말했다.

 

한비자가 전한 공자의 이 고사는 가치관의 차이를 일깨우는 내용이다. 가치관은 또한 인식에서 나오고 인식은 판단에서 나온다. 미래학은 인류의 미래를 모든 사물에 대한 완급의 충돌을 분쟁 요인으로 예고하고 있는데, 이 역시 인식과 판단이 낳은 가치관의 차이다.

 

그러나 무서운 것은 가치관의 차이에 의한 충돌이 아니고, 가치관의 주객이 뒤바뀐 전도다. 충돌은 해결의 실마리가 있지만, 전도는 해결의 실마리가 어둡다. 지금 우리는 사물의 무서운 가치관의 전도 속에 혼돈을 겪고 있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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