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안·성’

편작(扁鵲)과 화타(華陀)는 손꼽히는 중국 고대의 명의다. 편작은 전국시대 사람이고, 화타는 후한 말의 사람이다. 편작은 특히 내과에 화타는 외과에 의술이 정통했다.

 

편작이 한 번은 정나라 임금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남이 알아보긴 어려우나 병색이 완연하여 “임금님의 살갗에 병이 들었습니다”하고 말했다. 그러나 임금은 못들은 척하여 거듭 “병이 살갗에 닿았을 땐 어려움 없이 침으로 나을 수 있습니다”라고 했으나 임금은 “과인은 아픈데가 없소”하고 내쳤다. 그러고는 편작이 나가자 “공연히 없는 공을 세우려고 한다”며 빈정댔으나 그로부터 한달만에 급병으로 죽었다.

 

화타는 관우가 어깨에 맞은 독화살촉을 빼는 수술을 한 적이 있다. 관우는 화타가 수술칼로 어깨뼈를 갉아내는 아픔을 참고 바둑을 두었다는 것은 유명한 고사다. 그런데 조조에게 죽임을 당한 게 화타의 종말이다. 조조는 편두통을 몹시 앓았는데 뇌종양이다. 화타는 조조에게 머리 수술을 권했다. 그러나 조조는 수술하려면 도끼로 두개골을 갈라야 한다는 화타의 말에 “누구의 사주를 받고 날 죽이려고 하느냐”며 대노한 끝에 죽이고 말았다.

 

명의도 특히 정통한 의술 분야가 있긴 하였으나 예전엔 대체로 종합의술이었다. 조선 중엽의 명의로 ‘동의보감’을 펴낸 허준(許浚) 역시 종합의술가다. 동약의학만이 아니고 서양의학 또한 종합의술이던 것이 전문의가 분류된 것은 20세기 들어서다. 의술의 발달에 따라 전문의 분야가 더욱 세분화하고 있다.

 

전문의 선택에 힘든 분야보단 비교적 손쉬우면서 돈 잘 버는 분야로 몰리는 쏠림 현상이 해가 갈수록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피부과·안과·성형외과 레지던트 지망생이 많아 ‘피안성’이란 신조어까지 생겼다. ‘피안성’ 레지던트 시험에 떨어지면 재수 삼수까지 한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예컨대 흉부외과는 정원 미달이 될 만큼 비인기 분야라지만, 환자의 위급성은 흉부외과가 더해 매우 중요하다. 산부인과 역시 인턴들의 지원이 적은 것은 아이를 낳지 않는 사회풍조 때문이다. 그저 웃어 넘길 일이 아닌 심각한 현상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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