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심리가 대세③] 한국은 아직 초기단계, 공부하는 지도자 나와야
김연아, 장미란, 박태환의 공통점은? 어린 나이에 각자의 종목에서 세계를 정복했고, 스포츠심리학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는 점이다. 김연아는 자전 에세이 '김연아의 7분 드라마'에서 "얼마전 심리상담을 했는데 재밌었다. 스포츠심리학을 공부해보고 싶다"고 썼다. 2008 베이징올림픽 역도에서 금메달을 딴 직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심리상담의 효용성을 피력했던 장미란도 스포츠심리학자를 꿈꾼다. 지난해 로마세계선수권대회에서 심리적인 부담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노메달에 그쳤던 박태환은 올 1월 호주 전지훈련에 스포츠심리전문가 조수경 씨와 동행했다. 2~3년 전부터 스포츠심리학을 현장에 적용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고, 효과도 톡톡히 보고 있다. 스포츠심리가 대세다. 왜 스포츠심리가 필요한지 다각도로 살펴봤다. <편집자 주>
88년 서울올림픽 남자 다이빙의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던 '다이빙 황제' 그렉 루가니스(미국). 첫번째 시련은 스프링보드(3m) 예선에서 시작됐다. 9번째 다이브에서 구름판 끝에 뒤통수를 부딪힌 것. 루가니스는 5바늘을 꿰맨 후 가까스로 경기를 마쳤다. 그러나 다음날 결선에서 평정심을 잃지 않고 침착하게 기량을 발휘해 첫 번째 금메달을 땄다.
플랫폼(10m) 결선도 아슬아슬했다. 9회 다이브까지 중국의 14살 소년 송니에 3점차로 뒤진 것. 하지만 마지막 10회째 다이브에서 과감하게 '앞으로 서서 뒤로 세바뀌 반 돌기'를 시도했다. 점수판엔 이날 경기 중 최고점수가 표시됐다. 루가니스는 1.14점 차로 송니를 꺾고 두 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루가니스는 스포츠심리학에서 말하는 '루틴' 프로그램을 충실히 이행한 경우다. 연습 때의 다이브 장면을 머릿속에 저장하고, 온몸의 감각으로 익혀서 시합날 반복재생한 것. 그렇게 되면 긴장감이 극에 달하는 시합 당일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된다. 실제로 루가니스는 한 번 뛰고 나면 경기장의 환청과 수돗물 냄새까지 각인했다고 한다.
미국은 아마,프로 불문하고 80년대부터 스포츠심리학의 현장 적용이 활발하다. 아마스포츠의 경우, 88년 서울올림픽 전 해인 87년 미국올림픽위원회(USOC) 의료팀에 처음 스포츠심리학자가 공식임명됐다. 80년대 초부터는 스포츠심리학자 등록제를 실시해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지속적으로 배출한다.
청소년 국가대표도 심리상담을 받는다. 최근 한국에서 열린 17세 이하 축구대회에 출전한 미국팀은 스포츠심리학자가 동행해 화제가 됐다. 인하대 체육교육과 김병준 교수는 "엘리트선수는 생각이 습관화되어 있어서 심리상태를 바꾸기 힘들다. 하지만 어린 선수는 백지상태이기 때문에 상담내용을 스폰지처럼 흡수해 효과가 좋다"고 설명했다.
NFL, NBA, MLB 등 프로팀들에겐 필수가 된지 오래다. 모든 팀들이 스포츠심리학자를 고용해 선수들의 정신상태를 관리한다.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박찬호도 LA다저스 시절부터 스포츠심리학자 하비 도프만 박사의 도움을 받고 있다.
한국스포츠심리학회 김병준 학술이사는 "미국은 보통 스포츠심리학자, 영양사, 트레이너가 한 팀으로 움직인다. 스포츠심리학자가 독자적으로 개업하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에 한국도 이같은 모델을 벤치마킹하면 좋다"고 말했다.
◈ 중국은 90년대 중반부터 활성화, 효과 톡톡
중국(금 51개)은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미국(금 36개)을 제치고 메달합계에서 처음 1위를 차지했다. 순위도 중요하지만 금메달 격차를 시속적으로 줄였다는 점이 의미깊다. 중국은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선 미국에 금메달 28개가 뒤졌다. 그러나 2000년 시드니 12개, 2004년 아테네 땐 4개 차로 좁혔고, 급기야 2008 베이징에서 미국을 15개 앞섰다.
중국이 세계 스포츠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듭한 데는 국가주도 체육정책과 많은 인적자원 한몫 한다. 그러나 스포츠심리 등 과학적인 훈련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중국은 90년대 중반부터 국내외 주요대회를 앞두고 대표팀에 스포츠심리전문가를 고용한다. 올림픽에선 96년 애틀랜타 때부터 일부종목에 심리담당자를 두고 있고, 한국의 전국체전과 비슷한 성격의 인민체육대회에도 같은 해부터 성 대표팀마다 심리전문가를 초빙한다.
올림픽에서의 심리지원은 메달이라는 결과물로 나왔다. 베이징올림픽에서 수영대표팀의 심리상담을 맡은 스포츠심리학자 밍큐 푸(중국 중경시 우전대학 부총장) 씨는 "이 대회에서 중국 경영팀은 류즈거가 여자 접영 200m에서 금메달을 따는 등 금 1, 은3, 동2개 수확을 거뒀다. 일본, 중국, 한국이 경영에서 딴 금메달만 4개로 언론에서 '아시아의 반란'으로 표현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 치원에서 스포츠심리 쪽에 투자를 많이 한다. 현재 국가에서 스포츠심리센터를 운영 중이고, 중경시에도 심리체육연구센터 건설을 추진 중이라"고 덧붙였다.
◈ 한국은 시작단계, 지도자들 관심 가져야
우리나라는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박태환과 장미란 등이 금메달을 딴 후 스포츠과학(생리, 역학, 심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훈련량 세계 1위'라는 꼬리표의 한국 국가대표팀 훈련방식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스포츠과학의 한 분야인 스포츠심리는 효과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선수들이 필요성을 느끼는 것만큼 현장 적용이 활발하지 않다.
스포츠심리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대학원에서 스포츠심리를 전공하는 것외에 한국스포츠심리학회에서 매년 한 두차례 실시하는 스포츠심리상담가 연수과정을 마치는 방법이 있다. 1~3급으로 나눠져 있는데 선수,팀의 심리상담을 할 수 있는 일종의 자격증이다. 서울시태권도협회 지도자들의 경우 2006년 연수 때 단체로 참가한 적도 있지만 체육전공 대학,대학원생이 주류라는 점이 아쉽다.
김병준 교수는 "유명 선수 출신 현장 지도자 중 이 과정을 이수한 사람은 이에리사 전 선수촌장 정도에 불과하다. (스포츠심리상담가 자격 연수)가 공신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현장 지도자의 참여가 많아져야 한다. 다양한 종목의 일선 지도자의 교육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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