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할머니

임양은 본사주필 ye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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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돈은 참 좋은 것이다. 돈이 있어야 부모노릇을 한다. 돈이 있어야 자식노릇도 한다. 돈이 없으면 친구 만나기도 겁난다. 돈이 없으면 사람 구실을 제대로 못한다. 돈을 경멸시 하는 것은 위선이다. 사회적 경제활동은 소득, 즉 돈을 벌기 위해 서 하는 것이다.

 

이러한 돈을 얼마쯤 지녀야 하는 것일까, 정답이 있을 수 없다. 필요한만큼, 쓸만큼 있으면 된다지만, 돈이 많아지면 필요한 데가 늘고 쓸 데가 더 많아지는 게 돈이다.

 

돈은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는 것도 중요하다. ‘쓰길 잘 써야 한다’는 말이 있다. 물론 낭비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한데, 돈을 쓰는 덴 베푸는 씀씀이도 있다.

 

근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란 말이 신문 지상에 자주 나온다. 지도층의 사회 기부행위를 말한다. 원래는 프랑스어로 귀족(노블레스)의 의무(오블리주)란 뜻이다. 즉, 베품을 귀족의 품격으로 꼽았던 데서 유래한다. 물론 중세기의 귀족은 베품은 커녕 착취를 했으나 본연의 품격은 베푸는 것으로 꼽았던 것 같다.

 

국내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대표적인 이는 신양문화재단 이사장 정석규씨(81)다. 태성고무화학 창업주인 그는 빛바랜 양복을 입는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1987년부터 모두 300억원이 넘는 돈을 장학사업에 기부했다.

 

그러나 우리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선진국만큼 보편화되지 못했다. 이웃 사랑의 온정은 오히려 사회저변층이 더 두드러지곤 했다. 안산시사할린사업소에는 10여년 동안 연말이면 거액을 남 모르게 보내는 익명의 독지가가 있어 ‘홍길동’으로 불려졌다. 며칠 전엔 전남 담양군청에 장학금으로 써달라며 돈상자를 보낸 얼굴없는 기부가 있었다고 신문에 났다.

 

김춘희씨(85·서울시 양천구 신정동)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다. 생계비로 받은 정부 보조금을 푼푼히 모아 재작년에 500만원을 이웃돕기 성금으로 내놓은 이다. 그가 옥탑방 전세금 1천500만원과 사후 시신을 의과대학 연구를 위해 써달라며,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에 기증한 채 지난 4일 지병으로 세상을 떴다.  / 임양은 본사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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