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희씨의 모정

임양은 본사주필 yelim@ekgib.com
기자페이지

설날 아침 SBS 밴쿠버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천500m 결승전 중계방송을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희비가 엇갈렸다.

 

이정수(21·단국대)가 2분17초611로 우승, 한국에 첫 금메달을 안겨준 것은 감격적 환희였다. 그러나 이에 앞서 불과 결승선 20m를 앞두고 3위로 달리던 이호석(25·고양시청)이 인코스로 파고 들다가 2위인 성시백(23·용인시청)과 부딪혀 둘 다 함께 쓰러진 장면은 너무도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금메달과 함께 은·동메달까지 차지하는 싹쓸이를 눈앞에 두고 놓친 비운은 너무 참혹했다. 이에 겹쳐 분한 것은 오노(28·미국)의 오만한 태도다. 그는 우리의 두 선수가 넘어진 바람에 2위로 결승선을 들어서면서 손가락으로 자신의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한국 선수들끼리 빚은 비운을 조롱하는 것이었다. 일본계인 오노는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때도 같은 종목에서 교묘한 반칙(할리우드 액션)으로 김동성의 금메달을 빼앗아간 악연의 장본인이다.

 

금메달의 환희에도 어쩔 수 없이 가슴에 멍울진 아쉬움을 눈녹듯이 사라지게 한 것은 어제 아침에 일부 전국지 신문이 밴쿠버 현지에서 전한 따뜻한 모정의 소식이다. 이호석 선수가 성시백 선수의 어머니 홍경희씨(48)를 찾아 자신의 실수를 사과한 것도 용기있는 행동이고, 홍경희씨의 너그러운 관용 또한 대단한 것이다. “어머니 죄송합니다”라는 이호석 선수의 말에 홍경희씨는 “아니다. 둘 다 다치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너도 마음이 편치 않다는 것을 잘 안다. 주위에서 들리는 이야기는 무시하고 앞으로 남은 경기에 집중했으면 좋겠다”며 따뜻이 안아주었다는 것이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은 일생일대의 기회이고 또한 영광이다. 아들 성시백이 예선과 준결선을 거쳐 결선에서 이윽고 2위로 들어오는 것을 관중석에서 본 어머니 홍경희씨는 얼마나 가슴이 설레었겠는가, 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사고는 청천벽력 같아 기절할 일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마음인들 어찌 편할까마는, 이호석을 오히려 위로해주는 홍경희씨의 너그러운 마음은 아들의 동료 선수들을 모두 아들 대하듯이 하는 마음이 없으면 있을 수 없는 아름다운 모정인 것이다.

 

/ 임양은 본사주필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