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전부터인가 필자는 중소기업기본법 상 중소기업을 벗어난 기업들이 조직을 결성하여 자신들의 애로와 고충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정책을 다루는 관가에 메아리치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서 머지 않아 중견기업에 대한 지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결국에는 지원정책이 마련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최근 이런 생각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 같아 나름의 상상력에 우쭐함이 있었지만 이내 근심어린 심정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필자의 개인적 견해지만 솔직히 정부정책으로서 중견기업에 대한 지원정책이 별도로 필요한 정책인지는 동의하기 쉽지 않다.
중견기업에 대한 지원정책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양극화된 산업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중견기업에 대한 정의와 입법화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지원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세계적인 중견·중소기업을 지칭하는 ‘히든챔피언’의 5분의1 수준에 달하는 중견기업들의 수출실적을 우려하면서 자체역량으로 추진하기 어려운 중견기업을 둘러 싼 외적인 성장장벽을 정부지원을 통한 해소로서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질 좋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중소기업계의 반발을 의식해서인지 기존의 중소기업정책과는 차별화된 지원정책이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문제는 정작 중견기업계가 요구하는 지원정책의 내용을 보면 포장만 다를 뿐 내용은 R&D 정책자금 지원, 외국인 고용허가제 확대, 수출지원책 강구, 하도급대금 지급기일 법제화, 지방이전시 세제혜택 요구 등 중소기업계의 요구로 지난 반세기 동안 형성되어 온 지원정책의 내용이나 요구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중견기업에 대한 지원논리는 흡사 60~70년대 산업화가 미흡한 우리 경제에서 대기업 육성 및 우선지원정책을 통해 산업의 파이를 키운 뒤 나누어 갖자는 ‘선성장 후분배’ 경제성장정책과 유사하다. 물론 당시 이런 대기업 중심의 성장정책으로 오늘날 우리 경제가 이만큼 성장했지만 중견기업 지원정책이 당시와 같은 경제성장의 밑거름으로서 오늘날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서 기능을 하리라 기대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새로운 경제성장의 동력은 기업규모에 따라 달리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행 기업규모 관련 법인 중소기업기본법 틀 속에서 차별화된 히든챔피언을 발굴하고 지원함으로써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근본적으로 제한된 자원으로 효율적 배분을 통한 경제부의 가치를 최대화하여야 하는 국가경제정책목표로 볼 때 현재 기업규모의 범위를 3단계(소기업, 중기업, 대기업)에서 4단계(소기업, 중기업, 중견기업, 대기업)로 증가하는 것이 이런 정책목표를 구현하는데 보다 더 도움이 되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300여만 중소기업 중에서 히든챔피언의 발굴 및 이의 지원을 통해서는 얻어지는 일자리 수 보다 2천500여개인 중견기업의 지원을 통해서 얻어지는 일자리 수가 더 크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지 않는 한 중견기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논리는 미흡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타 산업과 비교시 지금의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정책도 상대적 지원비중이 부족하다고 인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견기업에 대한 정책지원을 할 만큼 나라의 재정이 넉넉하거나 국민의 납세의식이 후하지 않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중견기업의 법제화와 지원정책은 경제주체 간에 새로운 갈등만을 조장할 우려가 있으며, 그 경제적 실익이 이해 당사자간에 실증적으로 입증되고 공감되지 않는 한 도입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김수환 중소기업연구원 전문위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