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곡밥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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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의 상징이던 잡곡이 조명을 받는 이유는 잡곡에 건강을 되살리는 해답이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영양 편중이나 서구식 식문화로 생긴 각종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데 잡곡이 상당히 유용하다는 것은 최근의 각종 연구를 통해서도 입증된다. 잡곡에는 탄수화물·지방·단백질 등 필수 영양소 외에 각종 미량 요소가 고루 들어 있으며, 특히 우리나라 풍토 속에서 자란 토종 잡곡은 한국인의 인체에 필요한 생리활성물질들을 함유하고 있어 약리효과 또한 뛰어나다.

 

주요 잡곡 가운데 하나인 조의 경우 차조는 서숙, 메조는 좁쌀이라고 한다. 무기물과 비타민 등 쌀에 부족한 영양분을 고루 가지고 있어 임산부나 허약자, 환자들의 건강회복용 식품으로 애용돼 왔다. 옥수수는 단백질·당질·섬유질이 고루 들었으며, 씨눈엔 양질의 지방이 25~27% 함유돼 있다. 옥수수 속의 비타민E는 피부건조와 노화를 예방한다. 기장은 인류가 최초로 재배하기 시작한 식량 작물 중 하나다. 주성분은 조와 비슷하며, 조보다는 알곡이 굵다. 수수는 화본과 작물 중 특이하게 타닌을 함유하고 있으며 문배주의 원료로 사용한다. 찰수수는 정월대보름 약식의 필수 곡물로, 수수전병과 수수떡이 유명하다. 팥은 붉은 색을 띠기 때문에 제사떡, 동지팥죽 등 악귀를 물리치는 상서로운 식품으로 대접 받아 왔다. 진액을 빨아들이는 성질이 있어 각기병·수기병 등 부종관련 질환에 좋다. 메밀은 조단백질을 다량 함유하고 있고 비타민과 필수아미노산도 풍부하다. 녹두는 주성분이 당질과 단백질이다. 떡고물·죽·빈대떡·숙주나물 등 다양한 용도로 이용된다. 아밀라아제·우라아제 등 소화효소가 들어 있고 혈압강하·소염·해열 등에도 좋다.

 

우리 조상들이 조·귀리·수수·녹두·팥·메밀 등 잡곡을 꾸준히 재배해 온 것도 바로 의료행위와 먹을거리 농사는 한뿌리라는 ‘의식농동원(醫食農同源)’의 이치를 꿰뚫고 있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조선왕조 때 환갑을 넘겨 산 임금은 태조·정종·광해군·영조·광해군 등 5명인데 모두 잡곡밥을 즐겨 먹었다. 특히 83세까지 장수한 영조는 하루 세끼 잡곡밥을 즐겼다고 한다. 쌀에 잡곡을 섞은 밥은 보기에도 좋다. ‘잡곡이 약곡(藥穀)’이라는 세상이다. 날마다 잡곡밥을 먹을 순 없지만 옛날 장수한 임금처럼 잡곡밥을 즐기는 것도 건강에 좋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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