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제42호 석장 박찬봉씨
신체의 굴곡을 그대로 드러내며 춤을 추는 듯 생명력이 넘쳐나고, 옷 주름은 바람에 날릴 듯 정교하다. 경주 석굴암 본존불의 모습이다. 지금으로부터 1천200여년 전, 신라의 석공들은 단단한 돌을 마치 진흙처럼 다루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영원히 자애로운 미소를 머금은 이 석불을 만들어냈다. 수천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수천년을 이 세상 중생들에게 자비로운 미소를 안겨줄 석불 제작에 일평생을 바쳐온 이가 있다. 바로 40여년 석공 외길을 걷고 있는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42호 석장(石匠) 박찬봉씨(59)다.
● 목숨을 다해 만드는 천년의 미소
지난 18일 남양주시 진접읍에 있는 박씨의 작업장을 찾았다. 거대한 석조 불상 10여점이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 기자를 맞아 주었다.
“이곳의 불상들은 정해진 가격이 없습니다. 전국 사찰들로부터 주문을 받아 제작을 하기 때문에 계약된 가격은 있지만, 크기나 형태에 따른 공정가격은 있을 수 없죠.”
모양과 크기가 다른 각양각색의 석불들을 가리키는 박씨는, 가격을 궁금해 하는 우문(愚問)에 이같이 현답(賢答)했다. 우리나라에서 불상은 작품성보다는 신앙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더더욱 가격은 의미가 없다는 것.
석공예품은 약탕기, 절구, 돌솥, 석재가구, 돌장신구 등 석조각과 석조물을 비롯해 건축 석재물과 묘비석 등 다양하지만, 박씨는 사찰에서 쓰이는 석조각과 석조물을 주로 제작하고 있다. 이중에서도 박씨의 특기는 석조 불상이다.
“불상의 박하지 않고 절제된 듯 은은한 미소를 볼 때면 저도 모르게 경건해지고, 부처님의 자비로움이 느껴집니다.”
올 가을 부천에서 열리는 무형문화엑스포에 출품할 작품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는 박씨는 최근들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다름아닌 서민적인 불상을 만드는 것.
“석굴암 불상도 그렇고 역사적으로 전해지고 있는 대부분의 석불들은 귀족적인 느낌의 미소가 많습니다. 서민적인 느낌은 별로 없죠. 단, 경주 남산에는 몇 작품 있지요.”
서민적인 미소를 찾아 경주 남산을 몇 번을 오르 내렸는지 모른다는 박씨는 “서민들에게 마음의 안정과 평온함을 줄 수 있는 서민적인 미소를 머금은 석불 제작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 참선하는 마음으로 불상조각
평생 불상조각에 매달려온 그지만 작품을 대하는 자세는 한결같이 겸손하다.
“작품을 완성한 뒤, 운반하는 과정에서 파손의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석재는 너무 기교를 부려서는 안된다”며 “신라시대의 불상과 석탑들이 지금도 온전히 아름다움을 뽐내듯, 영겁의 세월을 버틸수 있는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박씨의 작품은 불순물이 적은 전북 익산 황등면 호남 채석장에서 나는 회백색 화강암을 주로 사용한다. 석재는 직접 석산에 가서 엄선해 구입한다.
“돌에도 결이 있기 때문에 뜻하지 않는 방향으로 갈라질 수 있습니다. 아무렇게나 두두리는 게 아니죠. 원석의 질감을 충분히 고려해 거칠게 쬔 다음 표면의 결을 부드럽게 만들고 그 후에 새기기로 마무리하지요.”
불상의 지대석(地臺石)은 다른 곳에 하청을 주기도 하지만, 불상의 얼굴만큼은 박씨가 직접 조각한다.
“불상은 예불의 대상으로 신도들이 마음의 평화를 얻는 형상물이기 때문에 심혈을 기울여야 합니다. 부처의 표정이 제대로 나올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가 있는데 후자의 경우가 되면 일에 대한 중압감이 심하죠.”
그러나 그가 만들어내는 부처의 미소는 불교경전 책자에 속표지를 장식할 정도로 불교계에서는 정평이 나 있다.
● 불교조각계 큰 스승 따라 불모(佛母)가 되다
박씨는 1969년부터 경북 달성군과 경남 마산에서 5년여간 석공일을 하던 중, 우연히 한국 불교조각의 큰 스승인 권정환 선생을 만나 본격적인 불모(佛母)의 길에 들어섰다. 불모는 조선시대 이후 불교조각가를 일컫는 말이다.
“단순 작업을 하는 석공으로 생을 마감할 수는 없었죠. 어느날 낙산사 불상에 쓸 원석을 찾아가던 선생께서 제가 일하던 공장에 들어와 길을 물었어요. 그때 선생님이 ‘전문적인 불교조각을 배울 생각이 있으면 찾아오라’고 했지요. 그렇게 만난 인연으로 제 평생의 업(業)이 결정된 겁니다.”
이후 박씨는 1972년부터 1977년까지 양양 낙산사의 해수관음상을 권 선생의 보조로 조각하고, 7년간 권 선생께 사사한 뒤, 77년부터 본인의 작업장을 만들어 독립했다.
대구 동화사 약사여래 석조대불입상 등 수많은 불상들을 조각해 왔다.
전국 유명 사찰에는 그의 작품이 한두개가 들어갈 정도로 한국 불교조각계에 서 명성을 얻고 있다. 경주시 해수관음 및 16나한상, 파주시 보광사 석굴, 강화도 보문사 석굴, 고성 문수사 석조삼존좌불상, 부산 옥련선원 좌불, 서울 화양사 석조입불, 동해시 사문선원 석조좌상, 포천시 법왕사 석조좌상, 전주시 효자동 사리탑, 지리산 영원사 지상보살 등 셀 수 없는 작품이 그의 손길을 거쳤다.
이밖에 미국 서미사 수조, 여주 목아박물관 자모관음, 양산 통도사 서축암, 함안 능가사 약사여래상, 고성 현불사 석조, 울릉군 성불사 약사좌상, 거제 칠천도 내곡사 삼존상, 서울 천개사 약사 입상 등이 박씨 작품이다.
● 석굴암 불상의 자애로운 미소 재현이 목표
“어려운 가정형편에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1천년 이상 이땅에 이어져온 불교조각의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낍니다.”
석굴암의 마애석존불이 천 년 이상의 세월을 뛰어넘었듯이 석조는 풍화작용에 마모가 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영겁의 세월을 버틴다. 비록 석굴암의 지휘감독에 다른 이의 이름 석자만 남았을 뿐이지만, 박씨는 항상 석굴암 불상의 미소를 꿈꾼다.
“제 일은 영겁의 세월을 견디는 돌로 신앙의 작품을 만드는 겁니다. 제 모든 기술과 정성, 목숨을 다해 경주 석굴암 불상의 자애로운 미소를 재현하는 것이 제 일생의 목표입니다.”
/윤철원기자 ycw@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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