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기념회와 대필

임양은 본사주필 ye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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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이 된 모 재벌 총수의 전기를 대필한 것은 유명 방송작가 K씨다. 대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있다. 집필에 필력도 문제지만, 본인이 쓸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대필엔 내용의 정확한 확인이 부단히 거듭된 끝에 원고가 탈고된다.

 

출판기념회가 사태났다. 6·2지방선거는 마치 출판기념회 홍수로 시작된듯 하다. 너도 나도 출판기념회를 갖느라고 야단법석이다. ‘남이 장에 가니까, 덩달아 장에 간다’는 식이다. 그 중에는 책을 낼만한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태반이다. 내용도 조악한 것이 대부분이다. 책같지 않은 책을 두고 출판기념회를 갖는 강심장이 정말 대단하다. 또 책같지 않은 책 출판기념회에 중앙 정치인들이 대거 내빈으로 참석하는 패거리 작당을 보면 코미디 같기도 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런 출판기념회 책들이 대필이라는 사실이다. 하긴, 박사 학위논문도 대필이 있다. 네티즌들에 의하면 논문 한 편이 인터넷 카페를 통해 일금 300만원에 거래되는 대필이 성행한다는 것이다. 본인이 아니면 쓸 수 없는 학위 논문도 대필이 있는터에 있을 수 있는 자전적 책의 대필이 흉잡힐 일은 아니다. 문제는 내용이다.

 

수원시 부근의 자치단체장 입후보에 뜻을 둔 어느 사람의 말에서 대필의 야바위 실태가 묻어난다. 누가 3천만원만 주면 책을 써주겠다고 해서 갑자기 책을 어떻게 써내느냐고 하니까, 몇 마디 말만 들려주면 다 책을 만드는 수가 있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 입후보 예정자는 하도 말 같지 않은 소리라 거절했지만, 자꾸 권하는 것을 뿌리치느라고 혼났다면서 쓴 입맛을 다셨다.

 

추측컨대 3천만원의 비용은 이렇다. 250쪽에서 300쪽의 책을 2천~3천권 출판하려면 1천500만원이면 가능하다. 나머지 1천500만원은 거의 대필료로 챙길 수 있다. 보통 200자 원고지로 1천200장에서 1천300장에 사진을 곁들이면 그만한 책을 만든다. 그러니까 200자 원고지 한장에 1만1천500원꼴 치이는 데 꽤 괜찮은 수입인 것이다. 속성으로 책을 뚝딱 만드는 대필 기술자들이 대단하다. 출판기념회 붐은 대필 기술자들의 계절인 것 같다.  / 임양은 본사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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