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의 ‘광란’

임양은 본수주필 ye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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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은 포퓰리즘의 계절인가,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온갖 선심공약이 널뛴다. 예비후보들은 말할 것 없고, 정당들 역시 대중영합주의에 급급하다. 군소 정당은 그렇다 쳐도, 한나라당·민주당 등 양대 정당 또한 포퓰리즘 경쟁에 빠졌다.

 

민주당이 자기네 후보가 단체장으로 당선되는 자치단체부터 초·중등 학생에 대한 전면 무상급식 공약을 발표하자, 한나라당은 점진적 확대를 내걸더니 안심이 안 됐던지 보육비 등 지원의 맞불 선심 공포탄을 쏘았다. 무상급식의 재원 대책은 없이 덮어 놓고 전면 실시를 주장하는 야권이나, 오는 2012년부터 유아보육비와 유치원비를 소득 하위 80%까지 전액 지원하겠다는 여권이나 다 허튼 소리다. 각기 소요 예산을 말하긴 하나, 주먹구구식이고 또 예산을 어떻게 마련하겠다는 것도 없다.

 

선거공약은 진실성이 담겨야 인정된다. 목표와 근거·기간 및 방법·예산과 재원·평가 등이 구체적으로 제시돼야 한다. 이를 검증하는 것이 매니페스토 운동이다. 이에 의하면 여권의 보육비 및 유아교육비 전액 지원이나, 야권의 전면 무상급식 실시나 다 공약의 자격이 없다.

 

“선거는 이기고 봐야 한다”는 것은 야권 인사의 말이다. 여권의 한 책임자는 “포퓰리즘이 득표에 먹혀들어 현실적으로 무시할 수 없다”고 토로한다. 예를 든다. 야권에서는 전면 무상급식은 무상 의무교육에 포함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급식은 보육이지 교육은 아니다. 무상 의무교육의 개념대로 하자면, 공짜 밥보다는 학용품을 공짜로 나눠줘야 한다. 그러나 이런 논리를 받아들이기보단 무상급식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대중심리라는 것이다.

 

‘부자감세’란 비판은 이 정권에 대한 민주당의 단골 메뉴다. 한데, 돈 내고 먹을 수 있는 집 아이들까지 전면 무상급식하자는 것은 이를테면 ‘부자급식’이다. ‘부자급식’을 위해 다른 예산을 빼돌리는 것은 국민이 손해 보는 것이지만, 이 또한 예산은 알 바 없다는 것이 대중심리라는 것이다. 이런 대중심리의 노림수는 한나라당의 보육비 등 전액 지원 선심 역시 다르지 않다.

 

중우정치다. 체제는 민주주의여도 대중이 선전선동에 넘어가는 포퓰리즘의 득세가 중우정치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정치를 타락시켰던 것이 바로 중우정치였다.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 또한 중우정치가 타락시키고 있다. 정치인만을 나무랄 일이 아니다. 책임은 국민사회에도 있다. 대중영합주의의 선전선동에 현혹되는 것은 우리 유권자들 책임이다.

 

분배를 탓하는 게 아니다. 사회복지로 구현되는 분배는 성장의 궁극적 목적이다. 그러나 이 목적은 성장이 전제돼야 가능하다. 또 물고기를 잡아서 주기보다는 물고기를 스스로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복지의 진수다.

 

제나라 환공이 술에 취해 관을 잃은 바람에 체면이 손상됐다. 이래서 관중의 건의에 따라 창고를 열어 백성에게 쌀을 나눠주고, 옥문을 열어 죄수를 풀어주었다. 사흘이 지나자 ‘임금이시여! 왜 관을 또 잃지 않나이까!’ 하는 노래가 저잣거리에 나돌았다. 후세에 한비자는 관중을 가리켜 ‘소인배’로 질타했다.

 

포퓰리즘의 득표는 비록 유권자의 잘못이긴 하나, 이를 악용하는 것은 정치권이다. 여야를 막론한 이런 정치권 사람들은 하나같이 소인배들이다. 정치인들이 제 돈으로 무상급식을 하는 게 아니고, 사재를 털어 보육비 전액을 지원하는 것도 아니다. 다 나랏돈이다. 세금이다. 국민의 세금 가지고 자기돈 선심 쓰듯이 해대는 무책임한 사탕발림 공약은 아편과 같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상대에게 듣기 좋은 잇속말로 솔깃하게 만드는 것이 사기꾼들 수법이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치권의 포퓰리즘을 개탄했다. “값을 치르지 않고 누리는 유토피아적 주장(선심공약)이 많아지고 있다”면서 재원 조달을 도외시한 공약(公約)의 공약(空約)을 경고했다.

 

“국가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바라기 전에 국민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된다”는 것은 미국 대통령을 지낸 존·F·케네디의 명언이다. 국민사회가 진정 원하는 것은 공짜가 아니다. 땀 흘릴 수 있는 일자리가 보장되고, 땀의 대가가 헛되지 않길 바란다. 정치권이나 유권자나 표 앞에 비굴하지 않고, 좀 더 당당해야 선거다운 선거를 치를 수가 있다.  /임양은 본사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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