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수원 오는 길에 제일 먼저 이르는 시(市) 경계지점이 지지대고개다. 예전엔 사근현(沙斤峴)이었으나 조선조 22대 정조대왕이 미륵고개라고 불렀다. 행정 구역상 옛날엔 광주군(廣州郡)의 경계였다가 수원군 일왕면, 시흥군 의왕면, 현재는 의왕시와의 경계가 됐다. 경수산업도로가 개설돼 고개의 정취가 사라졌지만 지지대고개는 수원 광교산의 서쪽에서 뻗어온 능선을 따라 산마루의 정상을 이룬 수원시의 관문이다.
정조는 수원의 화성(華城)을 축성(1794~1796)하고 부친 사도세자의 원소를 참배하기 위해 수원에 행차할 때나 환궁하는 길에 이 고개를 꼭 넘어야 했다. 정조는 수원에 올 땐 고개가 높아 어가(御駕)가 왜 이리 더디냐고 채근하였고 수원을 떠나 돌아 갈 때는 “천천히 더디게 가라”고 당부했다. 수원에 이르러선 “이르나 저무나 사모하는 마음을 다 하지 못하여 이 날에 또 다시 화성에 왔구나 (晨昏不盡暮 此日又華城)”하고 기뻐하였고, 환궁할 때는 남쪽을 바라보며 “지극한 슬픔이 가슴 속에 있으니 어떻게 참을 수가 있느냐”고 땅에 엎드려 일어나지 못했다. “명일화성회수원(明日華城回首遠) 지지대상우지지(遲遲臺上又遲遲)”란 글을 지어 떠나기 싫음을 읊었다. 그후 백성들이 임금의 행차가 ‘더디고 또 더뎠다’하여 미륵고개를 ‘더딜 지(遲)’자를 써 지지대고개라고 불렀고 정조의 아들 순조는 지지대비와 비각을 세웠다.
고풍 서린 한식건물 ‘효행기념관’은 바로 지지대 아래에 있다. 어버이를 존경하고 백성을 사랑한 정조의 생애와 치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시장엔 우당 이길범 화백이 그린 정조 영정을 비롯 화성의궤 복제분, 홍재어필 복제분, 한중록 복제분, 부모은중경 목판 복제본, 정조시문 한글 필사본, 정조대왕 능행도 등 76점의 문헌과 그림이 내방객들을 맞이한다. 기념관 뒤엔 안찬주 선생이 1986년 9월 15일 조각한 정조대왕 동상이 있어 더욱 옛날을 회상케 한다. ‘한국효사상연구회’가 효행기념관 경내에 있는 것도 뜻 깊다. 효행기념관을 가면 정조 사상과 체취를 느끼게 된다. 지지대에 이르러 노송지대를 지나 화성, 융능으로 행차하던 어가 행렬이 연상된다.
봄날 주위 풍광이 아름다워 가족들이 효행기념관을 찾아보는 일도 매우 유익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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