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공무원부패

임양은 본사주필 ye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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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럼, 오더를 딸 수 없어 관행인 걸…” 가령 1억5천만원짜리 공사 같으면 3천만원, 1천만원 공사면 100만원을 담당 공무원에게 줘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업어가기’도 있다. 예컨대 3천만원짜리 공사를 4천만원짜리로 꾸며, 시공업자가 4천만원을 받으면 부풀린 천만원을 공무원에게 되돌려주는 것이다. 원인 불명의 잦은 서류상 설계변경이 ‘업어가기’의 함정이다.

 

오더(order)란 원래 고전 건축에서 기둥과 지붕의 기본단위 형식을 말하는 건축 용어다. 지금은 업계에서 순서나 주문의 뜻으로 쓰인다. 즉 공사를 주문맡는 것을 ‘오더 딴다’고 한다.

 

수원 인근의 어느 유명 보리밥집에서다. 식당 객실은 구분된 방이지만 문이 없어 저쪽 방에서 하는 말들이 간간이 들렸다. ‘업어가기’ 등 공사비 비리는 친구간으로 짐작되는 서너명이 밥을 먹고나서 나눈 대화에서 나온 얘기다. 누군가가 반문했다. “그래가지고 이문이 남나?” 한숨 소리에 이어 나온 대답은 이랬다. “이문이라야 몇 안 되는 직원들 월급주고 현상유지하기에 바쁘지만, 어쩌나? 그래도 해야지 실적도 올려야하니까”

 

시공업자인듯한 그 사람의 말은 이어진다. 그렇게 담당공무원에게 돈을 주면 내부적으로 갈라먹는 모양인데, 담당공무원은 1년에 보통 2억원쯤은 별 문제없이 챙긴다는 것이다.

 

비록 그렇긴 해도 관청공사가 기업체공사보단 낫다며 이런 말을 또 했다. 기업체공사는 관계자들과 밤새워 포커판을 벌이며 돈을 잃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나저나 술로 골병들어 지금 내몸이 말이 아니다”라면서 돈도 돈이지만 잦은 술 접대의 애로를 토로하기도 했다.

 

이 같은 공사비 비리가 어찌 그가 거래하는 자치단체 뿐이겠는가, 대한민국 공무원 상당수의 부패일 개연성이 높다. 서민경제 안정을 위한 재정자금의 조기집행이 추진되고 있다. 아마 그도 이런 공사를 맡은 군소업자일 것이다. 그런데 재정자금의 조기집행이 부패관료의 먹이사슬이 되고 있다.

 

준공식부패다. 공무원부패는 예를 들어 인·허가 등 이권을 둘러싸고 뇌물을 건네는 지하부패만 있는 게 아니다. 야근은 않은채 도장만 찍고 야근비를 빼먹는 것 등이 공식부패라면, 공사비 비리의 경우는 준공식부패다. 그런데 공무원부패라고 하면 지하부패만 부패로 알고, 공식부패나 준공식부패엔 둔감한 것이 작금의 공무원문화다.

 

인식이 잘못됐다. 공사만 해도 그렇다. 오더 주는 것을 무슨 특혜를 베푸는 걸로 안다. 업자의 자치단체 시공 참여는 상생이다. 자치단체는 공사에 업자의 도움을 청하고, 업자는 자치단체로부터 정당한 대가를 받는 관계다. 이런 관계가 공무원의 먹잇감으로 왜곡된 게 시혜로 보는 관료우월주의에서 기인한다. 이를테면 업자 네가 나 때문에 돈을 벌면서 나에게 돈을 안 주어서 되겠느냐는 생각을 앞세운다.

 

설령 청렴한 담당공무원이 있어 비리를 외면하고자 해도, 그래서는 자리를 보존 못할 것이다. 왜냐면 윗사람이 보기엔 분명히 돈거래가 있을 터인데 상납을 않는다고 여겨 못살게 굴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화가 있다. 어느 계장이 국장에게 공사관련 서류의 결재판을 내밀면서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 끝을 둥글게 맞대여 보이며 “이것 준비 됐습니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준비물을 비치지 않으면 서류가 트집끝에 반려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한국사회의 공무원문화다.

 

결국 피해자는 국민이다. 관급공사는 조달청 단가가 싸다. 가뜩이나 이런판에 관료들에게 상납하자니 시방서대로 시공하기가 어렵다. 부실공사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 하여 국민의 세금이 절약되는 것도 아니다. 이런 저런 명목상 설계변경으로 공사비를 늘려 예산의 누수를 가져오기 일쑤다.

 

정보통신시대다. 이에 따라 행정장비 또한 첨단화됐다. 행정문화는 첨단을 걷고 있으나, 공무원문화는 부패의 늪에 그대로 잠겨있다. 당신 공무원인가, 일부의 공무원부패가 사회악을 유발한다.

 

/임양은 본사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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