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이나 천변, 호반의 버들은 그 자태가 곱다. 수양버들, 능수버들로 구분할 필요도 없다. 봄날의 버들은 더욱 순결해 보인다. 휘휘 늘어진 가지는 바람이 불어도 엉키거나 설키지 않는다. 그럴수록 여인이 긴 머리결을 빗질한 듯 가지런해진다. 아름다운 여인의 호리호리한 허리를 유요(柳腰)라고 ‘버들 유’자를 쓴다. 중국의 17세기 문장가 장조(張潮)는 “꽃 같은 얼굴, 새 같은 목소리, 달의 혼, 버들가지 같은 몸매, 가을 호수 같은 맑은 아름다움, 경옥 같은 뼈, 눈 같은 하얀 피부, 詩의 마음”을 갖고 있어야 미인이라고 하였다. 스스로 관직을 버린 후 귀향하며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심어 스스로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칭한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도 유명하다.
조선 4대 문장가 중 한 사람인 상촌(象村) 신흠(申欽)은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그 본질이 남아 있고, 버들은 백 번을 꺾여도 새 가지가 올라온다”고 버들을 찬미했다. 홍랑의 시조에 나오는 버들은 애절하다. 함경도 명기 홍랑은 조선 중기 문장가 고죽(孤竹) 최경창(崔慶昌)을 은애하였다. 북평사로 경성에 머물던 고죽이 귀경하게 되자 영흥까지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 비 오는 함관령에 이르러 “멧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의 손에 / 자시는 창 밖에 심어 두고 보소서 / 밤비에 새 잎 곳 나거든 날인가도 여기소서”라고 애달픈 심사를 읊었다.
수원시(水原市)의 옛 지명은 수주(水州)다. 유경(柳京)으로도 불렸다. 수원 각처에 버들이 많은 데서 유래한다. 수원천은 대천(大川)·망천(忘川)·화천(華川)이라고 한다. 화홍문(華虹門·북수문) 일곱 개 수문을 거쳐 다시 남수문(南水門)의 아홉 개 수문을 지나 남쪽으로 흐르는 수원천 양쪽에 줄지어 선 수양버들은 가경(佳景)이다. 수원팔경 중 하나인 ‘남제장류(南堤長柳)’다,
지금의 세류동(細柳洞) 이름이 원래는 버드내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버들이 도시화되는 과정에서 많이 사라졌지만 화홍문~매향교(화성박물관) 구간 수양버들이 옛날을 회고케 한다. 그런데 수양버들을 가지치기했다. 나무의 키도 잘라 놨다. 수원팔경의 수양버들을 전지(剪枝)하다니 개탄스럽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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