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이볜 전 대만 총통은 2000년 봄 대만 국민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취임했다. 당시 49세의 젊은 총통은 개혁의 기치를 높이들고 출마하여 만년 집권의 국민당 정권을 무너뜨리며 패기찬 민진당 정권을 출범시켰다.
그러나 집권 8년을 지낸 그의 이미지는 부패의 원조로 변했다. 수백억원대의 수뢰, 공금횡령과 이를 돈세탁한 공문서위조 등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천수이볜 뿐만이 아니고 부정축재에 공모한 처 우수진도 무기징역, 아들 천즈중 내외는 징역 1년2월이 각각 선고됐다. 이들 가족 4명에 대한 거액의 추징금도 물론 병과됐다. 또한 천수이볜 측근들도 모두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며칠전 항소심 판결에서 천수이볜 내외가 무기에서 20년으로 감형되는 등 유기징역으로 바뀌었다. 본인은 그래도 억울하다며 상고할 뜻을 비췄으나 무죄가 될 수는 물론 없을 뿐만 아니라, 중형에 처해야 한다는 게 대만의 국민적 정서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천수이볜은 공사판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고학으로 대학에 다니면서,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 인권변호사로 명망을 떨쳤다. 또한 부패 권력에 대한 저항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권력이 뭣인지, 집권하고 나서는 그 자신이 부패의 화신이 되어 일가족과 측근까지 공모한 부패집단의 원흉으로 변한 것이다. 청렴했던 개혁 인사의 부패에 젖은 말년은 정말 안타까운 면모다.
천수이볜의 법정 인생유전을 보면서 ‘한국판 천수이볜’이 생각난다. 이역시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 입신하여 대통령에까지 오른 입지전적 개혁 인물이였으나, 천수이볜과 비슷한 수백억원의 부패 혐의에 빠져 역시 말년에 오점을 남겼다.
대만에서도 천수이볜을 두둔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만의 그들은 부패의 잘못을 부인하진 않는다. 이에비해 ‘한국판 천수이볜’ 두둔자들은 부패 자체를 시인하기는 커녕 역공을 일삼는다. 마치 천안함 사태를 조작했다는 억지처럼, 참으로 상종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임양은 주필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