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넘치는 대한민국의 유전자

작년 봄 박물관대학에서 중국 답사를 가게 됐다. 남경에서 출발해 항주의 식당에 도착하니 보기로 되어 있던 ‘인상서호’라는 공연의 시작 시각까지 남은 시간은 20분 남짓. 현지 안내원들은 불가능할 거라고 했지만 식사를 마치고 버스에 오르니 오히려 3분의 여유가 생겼다. 17분 만에 60명이 식사를 마치고 화장실까지 다녀와 버스에 오르는 신속함에 안내원은 물론 식당 종업원들까지도 놀라워했다.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한국말은 “빨리빨리”라고 한다. 세계 어디서든 ‘빨리빨리’가 한국인의 특성을 나타내는 말로 자리잡은 것이다. 일상에서는 잘 못 느끼지만 외국에서 물건 값을 치르거나 티켓을 살 때, ‘참을 수 없을 만큼 느린 손놀림’과 ‘유치원생보다 못한 거스름돈 계산 능력’에 가슴 터질 것 같은 답답함을 느낄 때, 우리가 얼마나 ‘빠른’ 사회에 살고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사람들은 모두 다르다. 모습과 성격이 다른 개인이 모여서 국가 단위가 되었을 때 보이는 공통의 성향을 ‘민족성’이라고 한다. 민족성은 기후와 풍토의 산물이다.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최적화된 집단의 성향이 바로 ‘민족성’인 것이다.

 

우리 민족의 급한 성질은 언제부터 형성됐을까. 우리의 민족성이 본래는 여유 있고 느긋한 성향이었지만 해방 이후 먹고 살기 위해 정신없이 일만 해야 했던 근대화의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생긴 부정적인 성향으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은 듯하다. 이는 서양인의 눈에 비친 ‘조용한 아침의 나라’ 이미지나 소수의 ‘양반’이 중심이었던 조선 사회에 대한 편향된 이해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지금부터 1700여년 전, 중국 서진의 진수가 편찬한 ‘삼국지’가 있다. 위·촉·오 세 나라에 대한 역사를 기록한 이 책 중 ‘위지’의 동이전에는 부여·고구려·읍루·예·한·왜에 대한 내용이 수록돼 있는데, 그중 고구려전에 ‘성질이 급하고 사납다, 길을 다닐 때도 달리므로 걷는 사람을 볼 수 없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중국인의 눈에 비친 고구려인의 특성을 짐작할 수 있다. 시간이 곧 수입으로 연결되는 산업 사회도 아니었고, 휴대전화나 자동차가 없었던 고구려 시대에도 이미 우리 민족은 성질이 급해서 걸어도 달리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우리 민족의 급한 성질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왕성한 기력과 열정이다. 이성적이라기보다는 다분히 감성적인 성향이라고 할 수 있다. 열정에 불이 붙으면 모두 하나가 되어 뜨겁게 타오르지만 열정이 사그라지면 순식간에 모래알 같이 차갑게 흩어진다. 당나라의 백만 대군이 고구려를 공격해 왔을 때 하나로 뭉친 수만의 군민만으로도 그들을 막아냈지만, 청나라 군사 3만명 앞에서도 백성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 조선은 항복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를 우리는 알고 있다.

 

민족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민족성을 무시하거나 억압하지 말고, ‘조용한 은자의 나라’라는 허울에서 벗어나 우리의 진정한 원동력인 ‘빨리빨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냄비근성’을 버려야 한다고 혀를 찰 것이 아니라 다른 어느 민족도 따라올 수 없는 신명과 열정과 속도를 즐겨야 할 것이다.

 

4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세계인의 잔치가 시작됐다. 2002년, 우리의 하나된 마음이 이루었던 기적의 꿈을 떠올리며, 새로운 기적을 간절히 소망한다. 오늘밤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유전인자 속에 잠재된 뜨거운 열정으로 우리 모두 목청껏 외쳐 보자. 대~한민국!

 

/심광주 토지주택박물관 문화재지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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