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뺨은 우윳빛과 같고 머리결은 옻칠을 한 듯 검고 / 눈빛이 발에 들어오니 주옥과 같이 빛나네 / (중략) / 예로부터 아름다운 여인의 운명에는 기박함이 많으니 / 문을 닫고 봄이 다하면 버들꽃도 지겠구나” 중국 송나라 시인 동파(東坡) 소식(蘇軾)이 지었다는 가인박명(佳人薄命)이란 시(詩) 내용이다. 이 시에서 가인은 30대 미모의 여승인데 동파는 여승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을 것으로 상상한 모양이다. 박명(薄命)은 단명(短命)과 다르지만 ‘미인박명’이란 속설이 여기에서 유래된 듯하다.
미인들의 수난이 적진 않았다. 양귀비(楊貴妃)는 미인박명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당나라 현종의 총애를 한몸에 받다가 안록산의 난(亂) 때 38세로 처참한 죽음을 맞았다. 조선 최고의 절색이며 시인이라는 황진이(黃眞伊)는 숱한 남자를 울리다 마흔살 전후해 병사했고, 세상 여성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던 영국의 다이애나비는 36세 때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뭇 남성의 눈길을 사로 잡던 미국의 여배우 마를린 먼로는 36세에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우리나라의 여배우들이 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미인박명, 미인단명의 속설 탓인가 싶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무전유죄(無錢有罪)는 엇나가는 사회상을 빗댄 말이지만 미인유죄(美人有罪)가 있는 진 모르겠다. 매력적인 외모 때문에 직장에서 해고 당했다고 주장하는 미국 여성이 있다고 외신이 전해 생각 난 말이다. 연봉 7만 달러(약 9천736만원)를 받고 씨티은행 뉴욕 지점에 취직했다는 로렌자나라는 이 여성은 1년여만인 2009년 해고됐다. 그녀는 뉴욕 금융지구 인권사무실에서 “지나치게 몸매가 드러난 옷을 입어 동료들을 혼란케 했다는 이유로 자신을 부당하게 내쫓았다”며 은행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놓은 상태란다. 그러니까 “예쁜 것도 죄가 되느냐”는 얘기다. 씨티은행은 “업무 능력이 떨어져 해고한 것 일뿐”이라고 그녀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생길지 모르지만 알고 보면 미인박명이 지어낸 말인 것처럼 미모가 죄가 될 순 없겠다. 예쁜 얼굴이 어찌 죄가 되겠는가.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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