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병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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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참전소년지원병’은 6·25 전쟁 발발 당시 중학교 2~4학년에 해당하는 15~17세의 나이에 지원, 전투에 참여했다.

 

1950년 6월25일에서 휴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7월27일 사이에 입대, 자신의 키만큼이나 크고 버거운 총을 들고 전쟁터를 누볐다. 어린 나이에 소금국과 주먹밥으로 허기를 채워가며 적과 싸워 누란의 위기에 처한 국가를 구한 참전 용사들이다. 부상자는 물론 전사자도 적지 않다.

 

그러나 6·25 전쟁이 일어난 지 60주년이 됐지만 소년병들에 대한 대우는 열악하다. 더구나 ‘병역 의무가 없는 어린 소년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을 의식한 탓인지 아직도 정부의 실체 인정이 인색하다.

 

또 다른 문제는 위령탑은 물론 위령시설조차 없는 사실이다. 전국 300여 곳에 현충시설이 있지만 소년병 현충시설은 한 곳도 없어 6·25참전소년지원병중앙회가 해마다 임시제단을 만들어 위령제를 봉행한다. ‘떠돌이 위령제’를 지내는 상황이다. 올해는 지난 17일 대구 대명동 앞산공원 낙동강승전기념관 대강당에 마련한 임시제단 앞에서 ‘6·25참전 순국소년지원병(2268위) 위령제’를 지냈다. 이날 위령제엔 보훈처장, 육군참모총장, 육군 제2작전사령관 등의 조화가 놓여 있었지만 정부 대표론 대구지방보훈청 소속 과장만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순국한 전우의 넋을 기리기 위해 참석한 200여명의 생존자들이 더욱 눈시울을 붉힌 이유 중 하나다.

 

현재 생존 소년병은 4천748명이다. 이들은 모두 최소 75세가 넘은 노인들이다. 생존자들은 전쟁이 끝난 후 거의 국군에 입대, 복무를 마쳤다.

 

대부분 학업의 시기를 놓쳐 후손들이 어렵게 살고 있다. 소년병중앙회에 등록한 1천200여명의 회원 중 120명이 연간 5만원씩 내는 회비와 찬조로 월 20만원의 사무실 운영비와 매년 개최하는 위령제 비용 등을 겨우 충당하고 있는 형편이다. 소년병위령탑 건립은 국제적인 문제로 어렵더라도 위령제 봉행 지원은 가능하다고 본다. 6·25참전용사 대접을 받는 게 소년병 생존자들의 소원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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