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더미 자치단체

“집안 살림에 빚이 많아 올 가족 피서는 가지 말고 내년이나 내후년에 가자”(A형) “피서를 신용카드 서비스 대출로 가야 하니 검소하게 가자”(B형) “기왕 빚진 김에 빚을 또 내서 남들처럼 멋진 피서를 가자”(C형)

 

피서철이 절정을 이룬다. 살림을 책임진 가장은 가족들에게 이상 세 가지 유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물론 따로 저축했거나 여유가 있는 집은 얘기가 다르다. 허나, 먹고 살기 바쁜 대부분의 서민층은 가계부에 피서돈 마련의 별도 기장이 있을 수 없다. 문제는 아이들이다. 어느 유형의 아버지를 가장 좋아할까, 상식으로 보면 A·B·C형 순이다. 그러나 반대로 C·B·A형 순일 수도 있다.

 

지방자치단체 살림도 다를 바 없다. 지방재정이 빚더미라고 아우성들이다. 우선은 역대 자치단체장들 책임이다. 그러나 나의 책임, 시민들 책임 또한 있다. 우린 그동안 C형 집안의 아이들이었던 것이다.

 

사정은 지금, 이 순간 역시 마찬가지다. 가령 지방재정을 흑자구조로 건전하게 만든다며, 도시토목 공사도 안 벌이고 행사도 갖지 않는 등 시민에게 보여주는 것이 없는 자치단체장 즉 시장·군수는 무능한 시장·군수로 낙인찍힌다. 자치단체의 알뜰살림 효과는 시민들 생각엔 내 알 바 아니고 또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빚을 긁어모아서라도 곳곳을 파헤치고 거창한 행사를 자꾸 열어야 제법 일하는 것처럼 여겨온 것이 우리의 그간 인식이다. 민선5기 단체장들이 지금 돈이 없다고들 야단이지만, 이들 역시 무상급식 등 다음 선거용 전시성 사업을 위한 돈은 무슨 돈을 끌어대든 방만하게 벌릴 것이다.

 

그러나 단체장은 한두 번을 하든 세 번 하든 임기를 마치고 훌쩍 떠나면 그만이지만, 단체장이 남긴 빚은 정부도 갚아주지 않는다. 결국은 주민이 갚는다. 이런 빚이 도내 자치단체엔 모두 4조원이고 전국 자치단체로는 25조원이 넘는다.

 

하긴, 대한민국은 중앙부터가 ‘부채공화국’이다. 국가채무가 약 200조원이다. 정부 공기업부채는 610조원이다. 이런 중앙정부가 지방자치단체에서 진 빚 말고도 전국의 지방공기업이 모두 72조원의 빚을 졌다며 감사를 벌이겠다고 벼른다. 자치단체 빚이 폭증한 연유 역시 정부의 책임이 없지 않다. 경기 부양을 위해 예산 조기 집행을 독려하면서는 지방채를 묵과하다가 이제 와서는 기채 요건을 강화한다고 야단이다.

 

이 글을 쓰면서 자치단체란 말을 무척 많이 한다. 그러나 자치단체는 있어도, 지방자치는 없는 것이 우리의 지방자치제다.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뽑는다 해서 지방자치가 아니다. 자치사무의 내실이 있어야 지방자치다. 지방자치다운 지방자치는 지방재정의 건전성을 도모하는 첫걸음이다.

 

먼저 두 가지가 개혁돼야 한다. 중앙정부의 권력을 외교 국방·경제기조·국토환경 등 분야 외는 모두 지방에 넘겨줘야 된다. 또 국세와 지방세 비율이 8대2, 국세 위주로 편중된 현행 세제를 선진국처럼 지방세 위주로 개편해야 한다.

 

국세에서 감질나게 떼어주는 지방교부세보단 아예 지방세원 확대가 더 긴요하다. 아울러 정부사업은 국세, 지방사업은 지방세로 추진하는 혁신이 필요하다. 정부사업을 지방비가 부담하고, 지방은 국비 지원을 졸라대는 지금과 같은 재정구조는 기형아다. 문제점은 있다. 지방세 세원이 빈곤한 자치단체와 세원이 풍부한 자치단체 간에 ‘부익부 빈익빈’의 요인을 부정할 순 없다. 하지만 여기선 지면상 더 말할 수 없으나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도내가 모두 같고, 전국이 모두 같은 기계식 기초지방자치사무는 자치선진국에선 볼 수 없는 웃기는 현상이다. 자치단체 서로가 능력에 따른 차별 속에 경쟁하는 지방자치가 돼야 한다. 가령 자치단체 공무원들이 지방재정을 잘 꾸려 건전하면 급여를 더 받고, 잘못 꾸려 부실하면 급여를 줄이는 것이 지방자치다운 면모다. 도시건설·복지사업·교육 및 치안 문제 등 시책 또한 자치단체마다 창의성이 발휘된 고유의 특성을 가지며, 상호 비교 연구하는 역동적 지방자치행정이 돼야 한다.

 

요컨대 권한만 생각했을 뿐, 책임은 망각한 것이 병폐의 요인이다. 병폐의 요인은 여전하다. 분명하게 말한다. 서두에서 예를 든 지방자치단체의 A형 빚더미 타개는, 자치사무와 지방재정의 운용에 있어 권한에 상응한 책임을 귀속시키는 완전한 지방자치제 이행에서 시작된다.

 

임양은 본사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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