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이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을 찍으면 전쟁이고 민주당을 찍으면 평화라 해서 다 (민주당으로) 넘어가고, 이런 정신 상태로는 나라 유지하지 못한다. 그렇게 (북이) 좋으면 김정일 밑에 가서 어버이 수령하고 살아야지, 왜 민주주의의 좋은 것은 다 누리면서 북한을 옹호하고 그러냐. 이북 가서 살지….” 알려진 대로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말이다.
지난 24일이다. 아세안지역포럼(ARF) 참석차 하노이에 간 그가 현지 기자들과 만나 가진 간담회서 한 말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로서 사회 통합을 저해하는 적절치 못한 막말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파면해야 한다는 지탄까지 나왔다.
그러나 일리가 없지 않다는 생각을 갖는다. 젊은 층을 싸잡아 그같이 (북에 가서 살라고) 표현한 것은 어폐가 있지만, 그렇게 좋으면 어버이 수령하고 살아야 할 사람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북 가서 살아야 할 사람들은 젊은 층이 아니다. 기성사회인 층이다. 예컨대 평양 만경대는 김일성 저쪽 주석 생가다. 그곳 방명록에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통일과업 이룩하자’고 써놓고 돌아온 교수 같은 사람들이다. 김일성은 1994년 7월8일 82세로 죽었지만 아직도 주석으로는 살아 있다.
나라 좀먹는 종북주의자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를 이적단체로 규정한 확정 판결을 내린 것은 지난 23일이다. 범민련, 한총련 출신의 주사파들이 주도하는 단체다. 판결 이유는 이렇다. ‘실천연대의 활동은 북한의 활동을 찬양고무 선전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고, 국가의 존립 안전에 해악을 끼칠 위험성이 있어 이적단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집단시위를 이끌며 미군 철수를 주장한 게 이들이다. 미국산 쇠고기 촛불시위 땐 군중들에게 ‘청와대 진격’을 선동했다. 대법관 13명 가운데 소수 의견을 낸 대법관은 노무현 정부 시절에 임명된 4명이다.
공연히 여기서 난동 부리지 말고 북에 가서 살아야 할 종북주의자들이 많은 가운데, 북에 그대로 눌러앉아 살아야 할 종북주의자가 또 있다. 지금 평양에서 국빈 대접을 받고 있는 한상렬 목사다.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이다. 지난 6월12일 중국을 거쳐 불법 입북했다.
“남북 관계를 파탄시킨 이명박 정권의 반통일적 책동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목숨 걸고 왔다”(평양 도착 성명) “이명박 장로는 그동안 너무 많은 거짓말을 해 왔다” (2000년 6·15 정상회담을 말하면서) “남녘 조국, 남녘 동포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님의 어른을 공경하는 겸손한 자세, 풍부한 유머, 지혜와 결단력, 밝은 웃음 등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북녘 조국은 진정으로 평화를 갈망하고 있다… 북녘은 주체사상을 기초로 핵무기보다 더 강한 일심단결·자력 갱생·혁명적 낙관의 3대 무기를 지니고 있다”(22일 인민문화궁전 기자회견) “이명박이 남조선 동포를 속이고 반민족 독재, 반자주 예속화, 반자연 환경 파괴를 일삼고 있다”(23일 환영군중집회에서) 앞으로 또 무슨 말이 나올지 모른다. 며칠 전에는 판문점에 들러 북쪽 경비지역에 세워진 ‘김일성 친필비’를 둘러보기도 했다.
진보로 위장된 폭력혁명 기도
한상렬 목사는 “오는 8월15일 판문점을 통해 남녘 조국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오긴 왜 와? 그렇게 좋은 ‘북녘 조국’에서 그대로 살지 뭐하러 오느냐는 말이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로동당 규약 전문 가운덴 ‘남조선(해방과 혁명을 위한) 인민들의 사회주의화와 생존권 투쟁을 적극 지원한다’는 대목이 있다. ‘남조선 혁명 세력의 거점화’는 평화통일 방안의 하나다. 무력 또는 평화통일에 여러 갈래의 이런 시나리오를 설정해 놓고 있다. 그러니까 저들은 한상렬 목사 같은 종북주의자들을 ‘남조선 인민의 사회주의화’ 지원 대상으로 삼고, 또 ‘남조선 혁명의 거점’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 분단이 예를 들어 독일의 분단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우린 전쟁을 치른 데 있다. 전쟁을 안 치른 독일은 그래서 국민의 선택에 의한 통일이 가능했으나 우린 다르다. 전쟁이 불신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북이 동족상잔의 비극을 일으킨 엄연한 전범집단이란 사실이다. 언젠가는 평화통일을 해도 북이 이를 인정해야 가능하다.
한상렬 목사 같은 종북주의자들에게 묻는다. 한반도를 ‘시산혈해’로 만든 전쟁 도발의 책임을 외면한 저들의 평화 공세가 정녕 진정한 평화냐는 것이다. 하지만 당장 그 책임을 묻자는 것은 아니다. 지금 제기하면 일이 꼬이기 때문에 유보하는 것이다. 진보주의도 좋고, 좌파도 좋다. 다만 평양정권의 졸개 노릇은 더는 그만둬야 한다. 그것은 결단코 용인할 수 없는 진보 좌파로 위장된 폭력혁명의 기도다.
임양은 본사주필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