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청사에 R&D단지 유치… 4선 힘 실어준 지역에 보답”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의 도화선이 됐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주임검사로 유명한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4선, 의왕·과천). 그가 일곱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중학교 입학금이 없을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중학교 입학금이 모자라 어머니가 입학금을 깎아 달라고 사정하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 순간 어릴 적부터 간직한 시인의 꿈을 접고 힘센 사람이 되어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줘야겠다고 결심했다”던 그는 지금 집권 여당의 가장 힘 있는 대표로 우뚝 서 있다.

박종철 사건 당시 ‘정의에 반하여 비굴하게 사느니 차라리 명예롭게 사직하겠다’고 배수진을 쳤었던 그는 원칙과 정도,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소유자로 일컬어진다.

1997년 한나라당이 출범한 이후 경기도 출신 의원으로는 처음으로 선출직 대표를 맡고 있는 안 대표를 만나 생의 전환점이 됐던 박종철 사건, 가난했던 어린 시절, 정치에 입문하게 된 동기, 차기 대권후보와 정권 재창출에 대한 소신, 당 대표로서 야심찬 포부 등을 들어봤다.

 

따뜻한 보수·합리적 보수·중도보수로 전환 서민복지 위해 보다 많은 시간·돈 투자해야

 

■ 의왕에 철도특구·지하철 만들 것

“의왕시와 과천시 주민들께 감사드린다. 네 번씩이나 한 번도 떨어뜨리지 않고 당선시켜 줬기 때문에 지금 당대표도 할 수 있었다. 4선 의원으로 당대표가 됐기 때문에 과천시민을 위해, 의왕시민을 위해 큰 봉사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과천시와 의왕시에 큼직한 선물을 드리려고 한다.”

 

안 대표는 이날 특별인터뷰에서 의왕·과천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큰 선물’(지역발전 계획)을 공개했다.

 

과천의 경우, 정부청사 이전부지에 R&D 단지와 대기업 본사를 집중 유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과천지원특별법을 반드시 통과시켜 과천에 R&D 단지와 대기업 본사를 집중적으로 유치해 과천의 세수와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지금까지는 마권세를 지키는데 주력했는데 이제는 청사이전에 따른 과천지원이 가장 적합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가 4선으로 당대표이기 때문에 과천시민을 위해 큰 봉사를 할 수 있고, 제가 움직여야 할 시점이 됐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의왕에 대해서는 지난 1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사실상 확답을 받은 철도특구 추진을 약속했다.

 

안 대표는 “앞으로 일주일에 5일은 중앙정치를 위해 국정을 살펴야 하겠지만 토요일·일요일은 지역에 있으면서 지역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평생의 자부심, 박종철 사건

안 대표에게 먼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대뜸 “제가 아니었으면 영원히 묻혔을 것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제가 심장마비다 그냥 얘기했으면 끝날 수 있는 사건이었는데 제가 그때 부검 의사들을 찾았고 피멍든 것 다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그게 알려졌다. 만약 그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면 안기부 압력에 의해 그대로 묻힐 수 있는 사건이었다. 나는 그걸 평생 자랑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박종철 사건 담당검사로 유명해졌지만 어린 시절은 극히 가난했다.

 

어린시절 가난…시인 꿈 포기

불쌍한 사람 돕는 정치 결심

 

인권에 관한 제도 개혁도 추진

강성·날카롭게 보이는 것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

야당으로 10년 투쟁 때문

“일곱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그때부터 고생을 해가지고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도시락을 못 싸갖고 다녔다. 그 바람에 골격이 작다(웃음). 집안이 가난하고 돈이 없어서 어머니가 나를 중학교에 입학시키려고 교장선생님께 며칠간 울며 매달리는 걸 봤다. 그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한다. 또 나 때문에 작은 누님이 중학교를 다니다가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에 취직했다. 어머니는 나무를 하고 누님은 공장에 취직해 공부를 해가지고 형님은 육군사관학교를 가고 나는 공부를 잘해 서울법대를 진학했다.”

 

■ 정도를 가르친 어머니-부드러운 카리스마

안 대표는 가난했던 집안얘기를 하면서 어머니에게서 ‘정도(正道)’를 배웠다고 말했다.

 

“집안은 가난했지만 어머니가 저한테 ‘언제나 올바르게 살라’·‘정도로 살라’고 철저히 교육을 시켰기 때문에 그동안 올바르게 살려고, 정도로 살려고 노력을 했다. 정치도 ‘정도의 정치’를 펴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정도를 지키다 보니 원칙주의가 됐고, 원칙을 지키다 보니 강성으로 비추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내가 원칙주의자이기 때문에 강성으로 비추기도 하는데 강성이 아니고 의원들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졌다고 한다. 원내대표 두 번과 당대표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의원들이 지지 안했으면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졌다는 그분들의 말씀이 옳은 게 아닌가 생각한다. 날카롭게 보이는 것은 야당을 10년 하면서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투쟁을 했다. 투쟁의 이미지가 각인이 돼서 그럴 것이다.”

 

이미지를 얘기하면서 ‘가족들은 무서워하지 않는가’ 묻자, 그는 소탈함을 강조하며 “우리 가족들은 저를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다”면서 웃었다.

 

“제가 원칙주의자이고 검찰 출신이고 야당으로 10년 투쟁하다 보니깐 사람들은 나를 굉장히 날카롭게 보고 강성으로 보는데 저는 굉장히 소탈하다. 소탈하고 부드러워서 우리 가족들은 저를 무서워하지 않는다.(웃음)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애들하고 씨름도 하고 친구처럼 지낸다.”

 

■ 인권제도 크게 개혁하기 위해 정치입문

‘젊은 시절 민주화 운동, 박종철 사건 수사담당검사, 인권변호사, 다문화 지원활동 등을 많이 했는데 그런 이미지와 지금 보수당 대표 이미지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를 하게 된 동기가 궁금하다’는 질문에, 안 대표는 “인권에 관한 큰 제도를 개혁하기 위해 정치를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답변했다.

 

그는 “저는 중도보수라고 보면 된다”면서 대학 다닐 때 학생회 부회장을 하며, 사카린 밀수사건 성토대회 주도하다 대학 3학년 때 1개월 정학 받은 일, 4학년 때는 6·8 부정선거로 박정희 정권에 항의하다 집시법 위반으로 피해 다닌 일, 졸업한 뒤 고향 마산에 내려가 1년 야간학교 선생 뒤 고시공부해 검찰생활, 박종철 사건으로 검찰을 그만둔 뒤 인권변호사로 활동한 일들을 술회했다.

 

그는 “인권변호사를 해보니깐 개인적인 활동 가지고는 인권에 관한 큰 제도를 개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내가 정치를 하는 게 좋겠다 생각했다. 법조 선배인 이회창 씨(현재 자유선진당 대표)가 신한국당에 입당한다고 해서 그분을 존경하고 친했기 때문에 따라서 신한국당에 입당을 했고 15년째 국회의원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 변화와 개혁, 화합과 상생

대표가 된 후 성사시킨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의 만남 등 화합의 정치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안 대표는 대표경선 때 내건 ‘변화와 개혁, 화합과 상생’을 거듭 강조했다.

 

“‘변화와 개혁, 화합과 상생’의 정치를 하겠다고 했고, 대표가 되고 나서 바로 시작한 것이 박 전 대표와 이 대통령의 화합이다. 서로 화합하고 협력하는 것이다. 그 일을 제일 먼저 했고 성사가 됐다.

 

그는 변화와 개혁과 관련, “한나라당을 변화시키겠다”면서 국민지향공천제도개혁특위·2030 본부(20대·30대와의 소통)·디지털본부(디지털지도자 1만명 양성)·서민대책특위·문화예술특위·디지털한나라당(지난 1일 창당)을 만든 사실을 소개하며 “제가 지금 해야 할 일이 굉장히 많다”고 의욕을 보였다.

 

특히 그는 연수원 임대와 차세대 지도자 양성 등을 위한 당원연수 계획에 대해 야심찬 계획을 밝혔다.

 

“연수원을 두 가지 방향으로 운영하려고 한다. 연수원을 지을 돈이 없으니까 전국의 콘도체인망 가깝게 가서 강의실이라든지 운동장이라든지 빌려서 당원연수를 하겠다. 경기도 같으면 양평 같은데 가서 1박하면 돈이 많이 드니깐 하루 연수를 하고, 단합도 하고 전진교육도 하겠다. 또한 서울시에 200평 정도 빌리려고 한다. 디지털·2030·여성위·청년위·장애위 등 특수부문위 전문적 지도를 할 수 있게끔 서울시내에 마련하려고 한다. 이렇게 이원화 해가가지고 연수를 해나가려고 한다.”

 

안 대표는 또한 화합과 상생의 정치에 대해 “우선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와 화합하도록 했고, 야당과 상생의 정치를 펴겠다. 야당 전당대회가 끝나면 야당 지도자들과 만나 상생의 정치에 대해 논의하겠다”고 덧붙였다.

 

■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 창출

안 대표는 당의 보수 이미지와 복지 정책에 대해서도 변화를 강조했다.

 

보수 이미지와 관련, 그는 “지금까지 우리가 너무 보수적인 색채를 띠고 있지 않았느냐 생각한다. 그래서 따뜻한 보수·합리적 보수·중도보수 이런 쪽으로 방향을 바꾸려고 한다. 대북관계도 보다 전향적으로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복지 정책에서는 “서민복지를 위해 보다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한다”면서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 창출”이라고 밝혔다.

 

“20·30대가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고, 가족을 부양할 수 있도록 적어도 60대까지는 직장에서 편안하게 일할 수 있는 것이 최고의 복지라고 본다. 또 일할 수 없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정책,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위해 당의 정책을 바꿔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정책 바꾸지 않고 소통만 한다고 해서 되겠나, 정책을 바꿔가면서 (20·30대와) 소통해 나가겠다.”

 

약  력

▶사법고시 합격. 전주, 대구, 마산, 서울지방법원 검사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 공보이사(대변인), 경향신문 객원 논설위원 ▶15·16·17·18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원내대표, 대표특보단장, 부총무, 대변인, 총재특별보좌역  대담=최종식 정치부장, 정리=김재민기자 jmk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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