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1차전을 앞두고 김성근 감독은 "전혀 긴장감이 없다"는 말을 했다.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 페넌트레이스를 1위로 마쳐 오랜 휴식을 가졌지만 그로 인해 감각이 현저히 떨어져있다는 뜻으로 불안감을 의미했다.
실제로 김성근 감독은 올해 1차전을 앞두고 버리는 경기로 삼을 지, 총력전을 펼칠 지를 놓고 고민하다 플레이오프 승부가 마지막 5차전까지 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후자를 택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그래서 1차전 선발 김광현의 역할이 중요했다. 감각이 떨어진 야수들을 이끌고 마운드를 외로이 지켜야 했다. 또한 플레이오프 혈투를 펼쳐 실전 감각과 자신감이 최고조에 오른 삼성 타선을 효과적으로 봉쇄해야하는 막중한 임무가 주어졌다.
김광현은 시속 150km에 육박하는 직구와 140km를 상회하는 위력적인 슬라이더로 경기 초반 6타자 연속 탈삼진을 솎아내는 등 압도적인 구위를 자랑했다. 변화구를 너무 많이 던진 탓에 경기 중반 힘이 떨어져 역전을 허용했으나 김성근 감독은 "김광현이 너무 잘해줬다"며 칭찬하기에 바빴다. 김광현의 역투 덕분에 가장 두려웠던 경기 초반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는 의미다.
김성근 감독은 19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4차전을 앞두고 김광현의 호투 의미를 재차 강조했다. "휴식이 늘 좋은 것은 아니다. 1차전은 우리에게 위험한 경기였다. 초반에 리드를 당했으면 무너질 수 있었다. 그 흐름을 김광현이 잡아줬다"고 평가했다. 이어 "삼성이 플레이오프를 치르면서 좋았던 흐름을 끊는 계기 역시 김광현이었다"라고 덧붙였다.
1차전을 무사히 넘긴 SK는 되살아난 경기 감각을 바탕으로 삼성을 벼랑 끝에 몰아세웠다. 인천 2차전과 대구 3차전 모두 경기 중반까지 팽팽한 흐름이 있었지만 주도권은 항상 SK가 쥐고 있었다. 반대로 의미하면 삼성에게는 1차전이 가장 좋은 기회였다. 그 기회를 잠재운 것이 바로 첫 4이닝을 탈삼진 8개를 곁들이며 완벽히 틀어막은 김광현이라는 설명이다.
SK가 페넌트레이스를 1위로 마치는 데 있어서도 김광현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그는 17승7패 평균자책점 2.37로 잘 던져 리그 다승왕에 등극했다. 1년동안 마운드를 지탱해준 가장 큰 힘이었다.
작년의 아픔이 있었기에 올해 김광현의 분전은 더욱 빛이 난다. 김광현은 지난 해 8월 두산 김현수의 타구를 손등에 맞는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한국시리즈에 출전하지 못했고 팀이 7차전 접전 끝에 패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그래서 올해 한국시리즈가 하루빨리 개막하기만을 기다려왔다.
본인 스스로는 아쉽다는 평가를 내렸지만 어쨌든 김광현은 SK의 한국시리즈 첫 테이프를 깔끔하게 끊어냈다. 그리고 SK가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마지막 순간 마운드에 서있는 투수가 됐다.
김광현은 4-0으로 앞선 4차전 8회말 때 만루 득점권 위기를 1실점으로 막아내고 삼성의 마지막 추격의지를 꺾었다. 최형우와 조영훈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과정에서 시속 150km가 넘는 강속구를 연거푸 뿌려댔다. 1차전의 아쉬움을 달램과 동시에 1년 전 준우승의 눈물을 닦아내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였다. 김광현의 포효와 함께 SK의 정상 탈환 미션은 완벽히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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