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지방선거를 통해 제8대 경기도의회 의원이 된 나는 가족여성위원회 소속으로 행정사무감사를 처음 접하게 됐다. 의원이 된 지 불과 보름 만에 소관 실국의 업무 보고를 받은 것이 전부인 상태에서 행감을 실시한다는 것이 어찌 보면 모순이 따르는 일이었다. 도의원을 지낸 선배 의원을 찾아가 행감의 절차와 요령에 대해서 여러 날 자문을 받았다. 그는 “행정을 20~30년 한 공무원을 상대로 초선의원이 행정의 문제점을 추궁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기에 공부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며 “준비된 서면에 근거해 질의해야 공무원에게 진실한 답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둘째는 “절대로 윽박지르는 의원이 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의원이란 권위를 내세워 궁박하게 추궁하는 모습은 공무원은 물론 나 자신에게 절대 도움이 안 된다는 설명이었다.
가족여성위원회는 가족·여성·청소년·보육은 물론 평생교육과 관련한 광범위한 업무가 도사리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밤 12시를 넘기고 주말을 잊은 채 고단함과 싸우기를 한 달여가 넘도록 몰두했다. 이윽고 11월15일, 시민단체 모니터요원들과 공무원이 참석한 감사장의 분위기는 사뭇 숙연했다. 위원장의 개회선언과 공무원들의 증인 선서를 시작으로 나는 첫 발언권을 청구했다. 법률과 조례에 근거해 각종 사업 예산 편성의 부당성과 위법성을 지적하는 초선의원의 자세에 자못 놀라는 분위기였다. 밤10시가 넘어가는 행감의 하루하루를 마친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파김치가 됐지만 밤을 새우며 방패를 준비하는 공무원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다음날 질의서를 펼치며 경기도의 미래를 위한 창을 준비해야 했다.
개두환면(改頭換面)이라는 고사가 있다. ‘머리는 고치지 않고 얼굴만 바꾼다’는 말이다. 일의 근본을 고치지 아니하고, 사람만 바꾸어 그대로 행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경기도지사는 연임이 됐지만 제8대 도의회는 한나라당에서 민주당으로 다수당의 체제가 바뀌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말이 있듯이 의회의 새로운 구성원이 왔으면 집행부의 마인드나 행동이 새로워져야 하는데 지난 4년의 타성에 젖은 듯했다. 의회의 다수당은 국정지표나 정당의 이념이 전혀 다른 것임에도 이에 대한 대비나 변화의 자세가 전혀 없었다. 소관 실국의 해당 업무가 아닌 것을 조례를 개정하지도 않고 임의로 이관해 실시하고, 법적 실체가 전혀 없는 단체에 출연금을 지원하고 예산 편성의 문제점 등을 지적하면 “그동안의 관행이었다. 문제가 없다”며 항변하는 모습은 안타까운 부분이었다. 돌출된 문제점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개선하려는 자세보다는 순간을 모면하려거나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세는, 말이나 표정은 바꿀 수 있어도 마음은 변한 것이 없어 개두환면의 사례가 아닌가 싶다.
도지사와 도의원을 각각 선출하는 기관대립형(機關對立形)의 우리 체제에서 의회의 감시 기능을 인정하면서 행정의 효율성을 담보하는 진일보한 모습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처음과 나중은 언제나 엄숙한 법이다. 치열한 경쟁을 통과해서 처음 공무원 임용을 받을 때의 위민 자세와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지방의원 당선증을 받을 때의 설렘과 각오를 시간이 지나면서 관행과 타성으로 맞바꾸기에는 너무 안타까운 것이 아닌가!
어리석은 사람은 잠시의 꾀를 내어 문제를 회피하려 하지만 종국에는 더 큰 화를 부르게 된다. 이에 대한 피해는 도민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밤을 새워 노력을 한 결과로 나는 18명의 행감 우수의원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함께 해준 가족여성위 김유임 위원장과 여러 의원님들의 공조 덕이라고 생각한다. 토론회를 개최하고 조례 제·개정과 끊임없는 연구를 통한 의정활동을 하자 “초반부터 너무 열심을 내는 것이 아니냐?”며 걱정과 격려를 주시는 주민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한다. “선거 때 지하철에서, 노인정에서, 상가를 헤매며 표를 호소하던 마음을 생각하면서 언제나 처음처럼 일하고 싶습니다.”
윤은숙 경기도의원(민·성남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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