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자 도여성단체협의회장이 꾸민 ‘나의 정원, 나의 서재
요즘 MBC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개인의 취향’엔 특별한 공간이 있다.
바로 서로가 연모하는 곳이란 뜻의 ‘상고재’(尙古齋)다.
서울 북촌 한옥마을내에 자리한 이곳은 드라마에서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이어주는 매개체이자, 갈등을 해결하는 중요한 장소로 벌써부터 일본 관광객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면서 인기 관광지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상고재의 인기비결은 단순히 유명 연예인들이 나온 드라마 로케이션 장소여서만은 아니다. 상고재엔 모던함과 고풍스러움이 공존한다. 왠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감각을 미니멀하게 조화시켜 까다로운 시청자들의 안목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멋드러진 한옥은 아니지만, 옥상에 정원을 꾸미고 자투리 공간을 소박한 서재로 만들어 자신만의 공간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금자(69) 경기도여성단체협의회장은 45만 회원을 둔 거대 단체를 이끄느라 밤낮없이 바쁘지만 주말만큼은 직접 만든 반찬들로 식탁을 꾸민다.
가족들과 마주 앉은 시간이 가장 소중하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주말 만찬은 큰 아들(전성철 변호사)이 장가를 들어 분가한 이래 20년 가까이 한주도 거르지 않고 계속돼온 것이어서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햇살이 가득한 5월 초순, 마침 집에 있다는 이 회장을 만나기 위해 용인 흥덕마을에 위치한 타운하우스로 찾아갔다.
초인종을 누르자 화장기 없는 소위 쌩얼에 나물 다듬다 나온 손이라며 흙내음을 물씬 풍기며 집안으로 안내를 한다.
31개 시군에서 개최되는 각종 행사를 챙겨야 하기 때문에 인사말 쓰는 것도 일이라며 서재는 책도 읽고, 글도 쓰는 소중한 공간 이라고 소개했다.
서재는 때이른 더위가 느껴지는 날이었는데도 창문을 통해 시원스레 불어오는 바람이 절로 기분좋게 했다. 비밀 다락방 같다고나 할까, 아니 농촌의 오두막 같은 그런 느낌이 사람의 마음을 푸근하게 했다.
◇인스턴트 주택에 지은 나만의 공간, 서재
빗살무늬 토기의 문양처럼 세로로 깍아지른 서재는 나무를 짜 넣어 꺼끌꺼끌한 질감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부러 기름칠 하지않고 자연 그대로 짜넣었다는 나무지붕은 한 낮의 뜨거운 열을 막아주고, 따스한 온기는 머금어 사계절 내내 독서하기엔 그만. 별다른 인테리어 없이 병풍을 두르고 손때 묻은 나무 책상 하나에 낮은 벽을 채운 서가가 전부지만 색깔 고운 보료가 분위기를 밝게 햇다.
“집필이나 구상을 위한 공간이에요. 서재라고 해서 읽지도 않으면서 무조건 책만 쌓아놓으면 의미가 없죠. 대신 좋은 책 몇 권과 가족들 사진들을 진열해 놓았어요.”
서재의 벽면을 미니멀하게 채우고 있는 서가엔 이 회장의 설명대로 사진들이 꽤 많았다. 액자식으로 가지런히 놓여있는 사진들 속 이야기가 지인들과의 끊임없는 이야기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는 듯 했다.
“서재엔 오전 6시에 한번, 밤 11시에 또 한번, 조용한 시간에 오롯이 정신을 집중할 수 있는 시간에 올라와요. 하지만 집무를 보는 장소가 아니기 때문에 생각의 꼬리를 잡다가 보료위에서 잠이 들때도 있어요.”
서가엔 도자기 몇점도 눈에 띈다. 겉모습만 화려한 것 보단 진솔한 내면의 목소리를 더 중시여기는 주인의 심성과 닮아보이는 청자에 그려진 대나무 그림이 푸르다 못해 눈이 부시다. 그리고 서재의 중앙에 자리한 널찍한 책상위에 놓인 하얀 종이는 곧 적혀나갈 생각의 꼬리들이 금세라도 술술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은 것만 같아 궁금해 진다.
◇삭막한 시멘트 바닥서 피어난 자연의 공간, 꽃밭
1년 전 유럽형으로 지어진 타운하우스로 입주할 때 이 회장은 거실서 태광CC를 조망할 수 있다는 장점보다도 가장 가슴을 설레게 했던 게 옥상을 이용할 수 있다는 거였다고. 화려한 인테리어나 장식재는 커녕 가구도 몇 십년 손때 묻은 것 그대로 옮겨놨다는 그는 대신 옥상에 정원을 꾸미기로 했다.
“정부에서도 국토를 아름답게 가꾸고 태양열을 이용하는 녹색사업의 일환으로 옥상정원 만들기를 독려하고 있잖아요. 국가적 시책에 발맞춘다는 거대한 뜻보단 제가 부지런해지고 행복해지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불현듯 어디선가 꽃내음이 코끝을 간지럽히는가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주인의 말대로 옥상 한켠을 둘러친 낮은 담위엔 감나무, 단풍나무, 연산홍, 철쭉, 블루베리, 꽃잔디, 장미, 솔나무, 목백일홍 등 수십 종이 넘는 꽃들이 만개해 꽃천지였다.
어느새 호미를 들고 나타난 주인의 흙 고르는 솜씨는 수준급이었다. 잡풀을 뽑으며 기자에게 호박, 오이, 고추를 심어 식탁위에 유기농 밥상을 내놓을 생각이라고 했다. 정원엔 꽃들 말고도 구경할 것들이 많다.
우선, 정원의 가운데에 자리잡은 흔들의자는 꽃향기에 취하고, 선선한 바람결에 두 번 취하기 좋은 장소. 책 한 권 들고 읽다가 그대로 눈을 붙이고 낮잠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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