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친구

연평도 피격 바람에 조용히 묻혀가는 큰 사건이 하나 있다. 대통령의 친구인 천신일 세종나모여행 회장의 구속 기소다. 지난 23일 법원에 넘겨진 검찰의 공소장 요지는 어느 기업인에게 금융권 대출과 세무조사 무마, 특사, 공유수면 매립 분쟁 등 해결 명목으로 47억1천여만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특가법상의 알선수재 죄목이 적용됐다.

 

그는 검찰 수사가 시작된 직후인 지난 8월19일 미국으로 출국해 한동안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안았다. 이래서 나온 것이 “살아있는 권력의 측근 비리엔 수사가 물렁하다”는 야권의 비난이었다. 심지어는 도피시켰다고도 했다. 검찰의 강력한 귀국 종용에도 버티던 그가 미국에 이어 일본에 머물다가 인천공항을 통해 들어온 것은 출국 100 여일만인 11월30일이다.

 

아닌게 아니라 평양사람들의 연평도 포격으로 국내 사정이 어수선한 틈을 타서 들어왔다. 들어와서는 이내 건강검진을 받는다며 서울 삼성병원 20층 VIP 병동에 입원했다. 검찰 수사가 다시 시작된 것은 그 다음주부터다. 그러나 천 회장이 실제 어떤 경로로 도움받은 사람의 청탁을 해결하려고 했는진, 거의 함구로 일관해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천신일, 권력예매한 장사꾼

 

주목되는 것은 있다. 지난해 초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뇌물수수 사건 수사과정에서 박 전 회장을 위한 세무조사 무마 청탁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적이 있다. 재판은 세종나모여행 주가 조작 혐의만 유죄로 인정돼 항소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된 것으로 끝났으나, 재판과정에서 천 회장이 한상률 전 국세청장과 대통령 형님인 이상득 의원에게 청탁 전화를 건 것이 확인된 것은 그의 평소 처신을 짐작게한다.

 

이 사람이 이명박 대통령과 대학동기로 40여년의 지기지우(知己之友)인 것은 세상이 다 안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과 대통령선거 때 이명박 후보의 인맥관리를 맡는 등 막후 기여가 절대적이라는 것도 모르지 않는다. 그의 비리는 이러하여 대통령에게 큰 정치적 부담이 된다. 대통령의 도의적 책임 또한 없지 않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아본다’는데, 이 점에서 인간 천신일은 친구 이명박에게 좋지 않은 이미지를 주는 못할 짓을 했다.

 

그가 권력 측근 실세로 협잡질을 하기 위해 친구를 대통령에 당선시키는데 애쓴 것은 중국 전국시대 말기의 거상 여불위를 생각케 한다. 여불위는 조나라의 볼모로 있으면서 냉대 받고 있는 진나라 왕의 서자 자초에게 접근, 장차 태자가 될 수 있다고 후대하면서 한 날은 자기 집으로 초청해 주연을 베풀어 조희라는 무희와 동침케 해 미구에 낳은 옥동자가 정(政)이라는 아이로 후일의 진시황이다.

 

여불위는 진나라 왕실에도 황금 600 근으로 이사람 저사람을 매수해 자초가 마침내 태자에 이어 왕위에 올라 자신은 승상이 됐는데, 얼마 안되어 자초가 죽자 13살 난 정이 왕이 되면서는 숙부를 겸한 실권을 행사하며 온갖 영화를 누렸다. 거상이었던 여불위는 자초를 이용한 투자로 진나라의 막대한 이권을 얻었으나 노매의 반란사건 연유로 BC 238년에 파직된지 2년뒤 음독 자살했다.

 

빛내는 측근, 망치는 측근

 

세종나모 회장 천신일씬 바로 거상 여불위처럼 권력을 예매한 장사꾼이다. 장사꾼이어서 나쁘다는 것이 아니고, 악덕 모리배를 방불케 하여 욕을 얻어먹는다. 이는 친구 이명박에 대한 우정이 아니다. 우정은 커녕 배신이다.

 

고사지만 이런 경우가 있다. 오나라에 항복한 ‘와신상담’의 월나라 왕을 도와 오나라를 패망 시키는데 수훈을 세운 범려는 벼슬길에 오르지 않고 그 길로 잠적했다. 한고조 유방을 도운 장량은 초패왕 항우가 자결하자 역시 종적을 감췄다. 진정한 친구는 권력을 쥔 친구의 곁에 다가서길 꺼린다. 권력의 잘못된 유혹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긴 해도 역시 측근이 필요하긴 필요한 것이 대통령 자리다. 측근이 대통령을 빛낼 수도 있고, 망칠 수도 있다. 미국 대통령을 사임 직전의 궁지로 몬 배후의 인물이 알고보니 대통령의 30년 지기였다. ‘미더100’이란 영화 얘기지만 의미가 있다. 천신일 회장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이 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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