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달 13일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에서 주최한 경기도 다문화가정 청소년 생활실태와 지원방안 연구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한 바가 있다. 이 토론회에 임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넓게는 우리나라, 좁게는 경기도의 다문화 정책의 방향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토론회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 바로 이 점이었다. 정책의 방향이 결정되지 않은 채 시도되거나 시행되는 정책은 잘 돼야 임기응변 식의 응급처치이고 잘못되면 오히려 역효과만 낼 수도 있어서 다문화 정책의 궁극적인 방향 설정이 가장 중요하고도 필요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와 경기도의 다문화 정책의 방향성은 어떻게 정립돼야 할까? 이 물음은 다문화를 이 땅에 가지고 오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입장에 따라 결정된다고 본다. 즉, 이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화와 언어와 정체성을 그대로 간직한 채 다양한 인종들 중의 하나로서 대한민국 땅에서 살도록 하는 것이 정책의 목적인지, 아니면 대한민국 국민들과 완전히 동화되도록 해 혼혈성이지만 새로운 단일민족, 혹은 문화권으로 계속 업그레이드를 하면서 살도록 하는 게 목적인지를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문화가정 청소년 정책의 경우 이들이 본래의 언어와 문화와 정체성을 유지한 채 우리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도록 하려 한다면 모국어를 잊지 않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들의 문화적 유산을 이 땅에 가져와서 그 문화를 향유하며 그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살도록 여건을 마련해 줘야 한다.
반면에 완벽하게 우리 민족의 언어와 문화에 동화되고 우리 민족적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하려 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잊고 우리 언어와 문화를 체득하며 심지어 혈통적 정체성조차 우리와 통합되도록 정책을 세워야할 것이다.
각자의 언어와 문화와 정체성을 유지하는 방향성을 취하는 나라들 중 대표적인 나라가 미국이다. 이 정책의 좋은 점은 일단 인도적인 얼굴을 하고 있어서 도덕적·윤리적으로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고 현재의 상황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앞으로의 삶을 일정부분 도와주면 되므로 비용이 매우 저렴하다는 것이다. 단점은 인종적 갈등과 충돌이 수시로 일어나거나 그 가능성이 항상 잠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완전한 통합을 추구하는 정책은 과거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지배하면서 사용했던 정책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하겠다. 이민자나 이민자의 자녀들로부터 본래의 말과 문화를 가능하면 완벽하게 제거하고 우리의 말과 문화를 습득하게 해 하나의 동질화된 집단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이 방향성의 장점은 그 효과를 보게 되면 모든 인종적 갈등과 충돌이 해소되고 그 가능성까지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험성도 있다. 무엇보다도 자칫하면 국제 사회에서 도덕적·윤리적 비난을 받을 가능성을 감수해야 한다. 정책의 대상인 다문화가정 구성원들로부터의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일본 식민시대까지 거슬러갈 것도 없이 오늘날 재일교포들이 일본에서 겪고 있거나 저항하고 있는 모습들을 본다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그렇다고 미국식 방향성과 정책이 최선의 것은 아닌 것 같다. 수시로 터져 나오는 인종 간 갈등은 가끔 세계 최강국으로서의 이미지마저 흐리게 만들 정도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미 갈등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아직은 다문화가정 청소년의 숫자가 미미한 정도이지만 동남아와 인도, 아프리카 등 우리 민족과 외모와 문화가 현저하게 다른 다문화가정이 확대되고 있고 이들의 숫자가 일정수준을 넘어설 때 미국의 문제가 남의 문제가 아니게 될 것이 분명하다.
지금 우리는 자연스럽게(또는 별 생각 없이) 미국을 모델로 접근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필자는 이제 정말로 진지하게 이 근본적인 문제를 짚고 넘어갈 것을 제안한다. 이 문제에 대한 국가적인 차원의 논의와 그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믿는다. 같은 민족, 같은 문화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역적 차이조차 극복 못하고 있는 문화에서 진정으로 인종적, 종족적 차이까지 완벽에 가깝게 극복할 수 있다고 어느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너무 늦기 전에 이 점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대안이 마련되기를 진심으로 빌어마지 않는다. 이상성 도의원(국·고양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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