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 마을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지붕 없는 박물관’, 이른바 ‘에코뮤지엄’(Eco-museum)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에코뮤지엄이란 지역 고유의 문화와 유산, 생활 방식 등을 그대로 보존하여 알리는 박물관이다. 주민이 직접 참여하고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많다는 점에서 ‘살아 있는 박물관’으로 불리기도 한다.
에코뮤지엄은 ‘지방 문화의 재확인’이라는 모토로 1960년대 프랑스에서 시작돼 유럽 전역으로 확산됐다. 국내에서도 2000년대 초부터 그 필요성이 제기됐으나 아직 지자체 주도의 일회성 행사에 머무르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에코뮤지엄으로 유명한 대표적인 지역이 프랑스의 ‘르크뢰조(Le Creusot)’와 ‘몽소레민(Montceau-les-Mines)’이다. 기관차와 석탄으로 유명한 산업도시였던 이 지역에 1970년부터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 속에 사람과 산업을 주제로 박물관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18세기에 만들어졌으나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운하를 테마로 운하 기술과 수문, 그리고 뱃사람의 생활을 포함한 운하 박물관을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오래된 학교, 작은 수도원, 기와 공장이 문화 체험장으로 재탄생했다. 그 결과 마을에는 일자리가 늘고 관광객이 넘치며 활기를 띠게 됐다.
에코뮤지엄으로 꾸밀 수 있는 아이템은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일례로 필자의 고향인 안성에는 아주 오래된 토종 배나무가 두 그루 있다. 금광면 상중리 배티고개와 고삼면 삼은리에 위치한 배나무는 국립산림과학원 감정결과 각각 수령이 230여년과 190여년이 넘은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 추이에 따라 참배와 취앙네(재래배)의 시조목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귀중한 자산이다. 10여년 전 경기도의회 농림수산위원장 시절 현장을 방문했을 때 금광면 참배나무는 비탈에 위치해 접근과 관리가 쉽지 않았으나 고삼면 취앙네는 호수변에 자리잡아 경관도 수려했고 안성배 홍보와 관광 자원으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었다. 즉시 시청에 이야기해 보호수로 지정하고 나무에 보호망을 설치해 관리토록 했다. 그러나 이후 별다른 역사적 탐구나 조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잘만 관리되면 안성배의 전통을 설명하는 귀중한 사료(史料)로 전국 배 농업인과 학자는 물론 외국 바이어가 찾는 명소가 될 수도 있는데 말이다.
이에 반해 강원도 양양군은 스토리텔링과 에코뮤지엄에 적극적이다. 양양군은 낙산배 명성 되찾기의 일환으로 가장 먼저 낙산배의 역사와 스토리를 복원했다. 조선시대 임금님께 진상됐다는 사실을 근거로 ‘임금님표’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낙산사와 낙산배를 접목시킨 시문(詩文)을 고증했다. 또한 1915년에 들여온 배나무를 시조목으로 지정하고 비석을 세우는 등 깔끔하게 단장해 명소로 홍보하고 있다. 안성 배나무에 비해 수령은 절반에 불과하나 훨씬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는 셈이다.
필자의 고향인 안성은 조선중기 전국 3대 시장으로 전통과 스토리가 무척 풍부하다. 남사당놀이·전통 시장·유기 공방뿐 아니라 포도·배·한우에 이르기까지 에코뮤지엄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산업화 과정에서 전통과 유산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다. 전통을 되새기며 현재 시각에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 채 소중한 유산을 버려두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지역 발전을 위해 지역 문화와 스토리를 접목시키는 스토리텔링과 아울러 이를 관광 자원으로 키워내는 에코뮤지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에코뮤지엄은 단순히 볼거리에 그치지 않고 지역의 전통과 정신, 그리고 추억을 되살려 고장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자긍심을 키우는 매개가 될 것이다.
김학용 국회의원(한·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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